검찰·경찰·국정원·국세청 수장 인사권 축소·폐지 없어
전문가들 "권력기관 정치 중립 위해 헌법에 명기 필요"
대법원장·헌재소장 인사권, 민주당안보다 후퇴 가능성
[ 서정환 기자 ]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한 헌법 개정 초안의 ‘제왕적 대통령’을 막기 위한 대통령 권한 축소 부분이 크게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5대 권력기관’ 중 감사원을 제외한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수장에 대한 대통령 인사권 축소 또는 폐지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 헌법 기관에 대한 인사권 축소도 ‘국회 추천’을 복수안 중 하나로만 제시했다. 권한을 분산한다지만 임기(5년 단임→4년 연임제)를 늘려 제왕적 대통령제를 유지하자는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주요 권력기관장 인사권 축소 빠져
14일 자문특위에 따르면 개헌안 초안에는 대통령의 주요 권력기관장 인사권 축소에 대한 부분이 빠져 있다. 김종철 자문특위 부위원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직접적인 (대통령의) 권한 축소와 관련된 부분을 헌법에 다 담는 데는 법 체계상, 구조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행정부 조직 인사에 관한 것은 법률로 정할 사안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권력기관이 ‘정치 중립화’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권력기관장 임면권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을 헌법에 명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국회 헌법개정특위 공동 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검찰 경찰 등 국민과 직결되는 5대 기관장의 대통령 임면권을 제한함으로써 각 기관이 독립적이고 정치 중립적으로 오직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도 “대통령의 과도한 인사권으로 인한 권력 집중 타파가 이번 개헌의 핵심”이라며 “자문특위 안은 이런 것을 고치려는 노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럴 바에야 개헌을 왜 하냐”고 비판했다. 권력기관에 대한 대통령 임면권을 그대로 두고 임기만 8년(4년 연임)으로 연장하면 권력기관은 더욱 정치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회 못 믿어 대통령제 유지”
자문특위는 또 권력구조를 대통령 4년 연임제로 하고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국회에 대한 국민 불신을 감안할 때 현 단계에서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전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자문특위는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도 국무총리, 헌법 기관장에 대한 인사권 축소나 분산은 구체적으로 명기하지 않았다. 총리 임명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이 지명하고 국회가 동의하는 현행안과 국회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개선안을 복수로 제시했다. 감사원은 현행 대통령 산하에서 독립 기구화하기로 했다. 자문특위는 “국민 불신으로 인해 국회 소속으로 하기는 어렵다”고 독립 기구화한 이유를 설명했다.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 헌법 기관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도 ‘국회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것을 포함한 복수안을 제출했다. 지난 2월 더불어민주당은 의원총회를 거쳐 “헌재소장, 헌법재판관, 대법원장, 대법관 선출에 있어 인사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추천받고 국회 동의로 임명하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발표했다. 개정안에 ‘국회 추천’이 빠질 경우 민주당 안보다 후퇴할 가능성도 있다.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추천을 위한 헌법기구로 인사추천위원회를 두고, 대법원장과 헌재소장은 호선제를 도입하는 건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내에서도 여야가 공감한 내용”이라며 “이 정도는 반드시 헌법이 명기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개헌 협상 속도 내나
문 대통령이 21일까지 정부 개헌안을 발의하기로 하면서 여야 개헌안 협상이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야권은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를 문제 삼기 전에 국회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며 “야당이 각자 안을 내놓고 집중해 논의하면 국회 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2+2+2 개헌 협의체(3당 원내대표·헌정특위 간사)’를 가동해 개헌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가 야권의 개헌 논의 동참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온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한국당은 개헌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개헌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야가 개헌안에 전격 합의하고 문 대통령이 정부안을 철회할 가능성도 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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