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창업가’ 노 이사, 젊은 엔지니어 손 대표 영입해 공동창업
가상현실 속 ‘디지털 휴먼’ 구현… 해외서도 “세계 최고 수준” 극찬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는 특히 중요하다. 2015년 설립된 가상현실(VR) 스타트업 리얼리티리플렉션의 손우람 대표(33)와 노정석 이사(42)는 그런 면에서 업계 안팎의 많은 주목을 받는 조합이다. 국내 벤처업계의 스타로 꼽히는 노 이사가 일면식도 없는 엔지니어였던 손 대표를 발굴해 창업에 나섰다는 점에서다.
경험이 풍부한 노 이사는 최고전략책임자(CSO)를, 혈기왕성한 젊은 피인 손 대표는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다. 서울 성수동 본사에서 만난 두 사람은 때론 동업자, 때론 멘토와 멘티 같은 느낌이었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VR 창업 의기투합
노 이사는 한 번 하기도 힘든 창업에 다섯 번이나 도전했고, 결과도 대부분 성공적이었다는 점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첫 회사 인젠은 코스닥에 상장했고 세 번째 창업한 테터앤컴퍼니는 미국 구글에, 네 번째 파이브락스는 미국 탭조이에 매각했다. 1996년 KAIST·포항공대 간의 해킹 전쟁을 주도해 구속까지 당한 ‘국내 1세대 해커’다. 손 대표는 공학도 출신으로 삼성전자를 거쳐 람테크놀로지라는 회사를 창업한 이력이 있다. 3D(3차원) 스캐너 기술로 성형외과용 맞춤 보형물을 만들었는데, 당시 KBS의 창업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2014년 말 우연히 이뤄졌다. 노 이사는 파이브락스 매각 후 새 투자처를 물색하던 중이었다. 콘퍼런스 참석차 코엑스에 들러 옆에서 열리던 다른 박람회를 구경하다 부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3D 기술을 소개하는 한 청년에게 눈길이 갔다고 한다.
노 이사는 “행사 마지막날이라 사람도 없는데 아주 열정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가만히 듣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특성을 다 갖추고 있었어요. 엔지니어인 것 같고, 자기가 만든 게 맞고. 한참 지켜보다 20분 후에 전화번호를 건네면서 말했어요. ‘다시 꼭 만나서 얘기 좀 하자. 나 이상한 사람 아니니 안심하라’고….”
그가 누군지 몰랐던 손 대표는 포털에 이름을 검색하고 나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저같은 엔지니어에게 ‘그 해킹 사건의 그 분’은 우상 같은 존재였거든요. 안그래도 질문이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만나 사업에 대해 얘기했고 몇 달 후 리얼리티리플렉션을 시작했어요.”
사람과 꼭 닮은 ‘AI 아바타’ 구현
리얼리티리플렉션은 인간의 사실적인 모습을 VR 세계에서 구현한 ‘디지털 휴먼’과 다양한 장르의 VR 게임을 개발한다. 이 회사 사무실에 들어가면 ‘실사형 인공지능(AI) 아바타’를 구현하기 위한 VR 스튜디오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160대의 DSLR 카메라가 모델을 사방에서 둘러싸고 작은 땀구멍 하나까지 촘촘하게 촬영하는 ‘3D 스캐닝’이 이뤄지는 곳이다.
노 이사는 이렇게 만들어진 AI 아바타를 ‘가상세계 속의 연인’에 비유했다. 촬영한 표정과 동작을 아바타에 자연스럽게 입혀내면 게임, 영상물 등 여러 분야에 활용할 수 있어서다. SK텔레콤이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공개해 호평 받은 ‘홀로박스’에도 리얼리티리플렉션의 기술이 들어갔다. 유리상자 속의 홀로그램 아바타에게 말을 걸면 날씨나 일정 등을 알려주는 제품인데, 걸그룹 레드벨벳 멤버 웬디를 실제로 찍어 만들었다.
‘아직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다른 유명 연예인들도 리얼리티리플렉션을 방문해 촬영을 마쳤다는 설명이다. 최근 이 회사를 찾은 미국 게임업체 에픽게임즈의 고위 임원은 홍채까지 훤히 보이는 아바타를 본 뒤 “이 정도면 세계 최고 수준”이라 극찬했다고 한다. 노 이사는 “유명한 VR 회사가 두세 군데 있지만 모두 미국·유럽 쪽이어서 동양의 미를 구현해내지 못한다”며 “얼굴 표정 캡처, 모델링 등 전 과정을 하나로 이어낼 수 있는 건 우리뿐”이라고 했다.
“3D, 애플보다 우리가 더 잘 만든다”
리얼리티리플렉션은 세계적 3D 아트 스튜디오로 꼽히는 쓰리래터럴과 제휴를 맺고 ‘제나(Zena)’라는 이름의 디지털 휴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손 대표는 “대기업에서 VR 콘텐츠를 공동 제작하자는 제안이 많지만 일단 우리 사업이 잘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어렵사리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2016년부터 ‘뮤직 인사이드’ ‘스피드볼 아레나’ ‘갱스타 언더그라운드 포커’ 등의 VR 게임을 꾸준히 출시하고 있다. 사용자의 표정을 그대로 따라 하는 이모지(이모티콘) 영상채팅 앱 ‘브이모지’도 내놨다. 손 대표는 “애플의 아이폰X가 3D카메라로 구현하는 기능을 우리는 2D카메라만으로 가능케 하는 기술력을 가졌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초에는 위치기반 모바일 게임인 ‘모스랜드’를 선보이기에 앞서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가상화폐공개(ICO)에 나섰다.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한 암호화폐인 ‘모스코인’은 프리 세일(사전 판매)이 38분 만에 마감됐다. 모스랜드는 현실의 부동산을 소재로 한 증강현실(AR) 게임으로, 주변의 각종 건물을 암호화폐로 취득하거나 거래하는 방식이다.
“2년 올인한 VR시장, 눈앞에 성큼 다가와”
창업 첫해만 해도 국내에는 VR 스타트업이 많지 않았고 투자자들 반응도 회의적이었다. 노 이사는 “VR에 올인하긴 했지만 매일 ‘이걸 왜 했을까’ 싶을 만큼 힘들었고 석 달에 한 번은 그만두려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듬해 들어 VR이 기술의 화두로 떠르면서 두 사람도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2년 넘게 버티니 꿈꾸던 시장이 열리는 게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노 이사는 “아직 대중의 99.8%는 VR 기기를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지만, 일단 써 보면 그 가치를 알게 된다”며 “VR 인터페이스가 갖는 힘은 정말 강력하다”고 강조했다. 리얼리티리플렉션은 지금까지 스톤브릿지캐피탈, SK텔레콤, 500스타트업코리아 등에서 수십억원대(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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