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서 승리한 오성운동·동맹
"불법 체류자 추방… 이민 반대", 극우·포퓰리즘 정당 과반 득표
렌치 前총리가 이끌던 민주당은 이민·경제 문제 소극적… 민심 외면
유럽서 거세지는 反EU 바람
英·폴란드·헝가리 등 선거에서도 유럽회의주의 정당 잇따라 승리
단순한 메시지 아닌 '경고' 의미… 伊·EU 기득권 층은 명심해야한
[ 양준영 기자 ]
우리는 지난 4일 이탈리아 총선에서 누가 승리했는지 알고 있다. 반체제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과 극우정당 동맹과 같은 저항 정당들이다. 두 정당의 득표율을 합치면 50%에 달한다. 우리는 또한 누가 패배했는지 안다. 마테오 렌치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좌파 민주당으로 19%를 얻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번 선거와 유럽의 다른 선거 결과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는 데는 몇 년이 걸릴 것이다.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이 반체제 정당들의 구체적인 정책 아이디어를 완전히 받아들였는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주류 정당들이 이민, 경제, 그리고 유럽의 민주주의 회복에 실패한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이민 문제는 이탈리아 선거를 이해하는 핵심 요소다. 2014년부터 60만 명이 넘는 이민자와 망명 신청자들이 불법으로 이탈리아에 들어왔다. 많은 이탈리아인은 밀려드는 난민에 압도당했다. 2017년 7월 실시된 입소스의 국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인의 66%가 자국에 너무 많은 이민자가 있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25개국 중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이었다. 민주당이 이끄는 중도좌파 정부는 이러한 우려를 간과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덮으려고 애썼다. 2016년 9월 리비아에서 이탈리아로 수천 명의 난민이 몰려와 이민 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렌치 당시 총리는 “비상 사태는 없다. 사람들이 있을 뿐”이라고 선언했다.
이런 발언들은 위기에 대처하는 정부에 대한 적대감을 억압하기보다는, 정부에 대한 반대와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겼다. 동맹과 오성운동은 여기에 부응했다. 오성운동의 창시자인 베페 그릴로는 모든 불법 체류자들을 추방할 것을 요구했으며, 동맹은 이민 반대를 주요 쟁점화했다. 유권자들은 국경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고, 법과 질서를 우선시하겠다고 약속한 정당을 지지했다.
경제 측면을 보면 이탈리아는 2011년에 시작된 일련의 침체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 했다. 두 자릿수의 실업률과 부진한 성장은 사회를 해치고 있다. 민주당은 그들의 경제 운영이 마침내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 대신 그들은 명백한 사실을 인정했어야 했다. 그리고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분명한 전략을 제시했어야 했다.
결국 이번 선거의 핵심은 이탈리아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고질적인 부패와 비호, 지나친 정치적 기회주의는 정부 신뢰를 약화시키고, 민주주의 위기를 불러왔다. 렌치 총리의 허울뿐인 제도개혁, 특히 그가 상원을 개혁하겠다며 개헌을 제안한 것에 대해 많은 유권자는 중대한 변화를 피하기 위한 우회 전술로 받아들였다.
젊은 비직업 정치인들을 앞세운 오성운동은 자신들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정당의 젊음과 미숙함(루이지 디마이오 대표는 31세)은 유권자들에게 장점으로 다가왔다. 로마시장 선거 결과는 이런 경향을 확인시켜줬다. 오성운동이 운영하는 지방정부는 아마추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 정당은 지난 총선에 비해 높은 득표율을 얻었다. 유권자들은 기존 정당보다 경험은 없지만 정직한 정부를 선호했다.
저항세력의 성공에 관한 이 모든 설명은 국내적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폴란드 헝가리에서 유럽회의적인 정치인과 정당의 선거 승리 이후 유럽 정치에서 유럽회의주의는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EU의 심장부(이탈리아는 EU의 원년멤버)까지 왔다면, 그것은 걱정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 브뤼셀에 대한 메시지가 있다. 이는 단순한 EU 반대가 아니다. 디마이오 오성운동 대표는 선거 운동 기간 부분적으로는 유럽 프로젝트에 대한 태도를 강한 반대에서 좀더 균형잡힌 변화 요구로 전환한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EU는 이탈리아의 투표를 적대행위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고로 여겨야 한다. 이탈리아 유권자들은 유럽이 외부 국경을 방어하고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EU 집행위원회와 같은 기술관료적 기구의 힘을 억제하고, 독일 주도의 EU에 대해 좀더 단호한 태도를 취하기를 원한다. EU는 이런 메시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탈리아의 독자적 정치체제와 EU를 위한 첫걸음은 오성운동이 정부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은 단일 정당 가운데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선거에서 승리했다.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은 디마이오 오성운동 대표에게 정부구성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이는 오성운동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 또는 실패하도록 할 것이며, 유권자들은 실패에 대해 투표로 응징할 것이다.
이탈리아의 다른 정당들은 연립정부를 먼저 구성해 오성운동을 배척하려 할지 모른다. 그리고 EU는 오성운동 세력이 유럽의 정치적 위기를 부채질할 것을 우려해 EU 이사회에서 따돌리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을 배제하는 것은 이미 취약해진 이탈리아의 민주적 토대를 더욱 약화시키고 제도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이탈리아의 민주주의와 EU를 지키기 위해선 오성운동에 기회를 줘야 한다.
원제=Italian Voters Decide to Give Populism a Chance
정리=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