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글로벌 프런티어] 호킹의 우주, 민스키의 AI

입력 2018-03-15 17:44  

[ 오춘호 기자 ]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무신론자였다. 캄캄한 천체를 관찰하고 우주를 얘기했지만 그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호킹은 인간 두뇌를 컴퓨터로 간주했다. 이 컴퓨터가 고장 나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도 했다. 천국이나 사후의 삶도 물론 믿지 않았다. 오로지 자연법칙만이 우주를 움직인다고 믿었다. 그가 말하는 자연법은 물론 자연에서 관찰된 일관성에 기반을 둔 규칙을 말한다. 이 규칙은 관찰 사례에선 예외 없이 성립해야 한다. 유신론자였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호킹은 하지만 인공지능(AI)에 대해선 아주 비관적이었다. 그는 AI 기술이 인류 문명 사상 최악의 사건이 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이론적으로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고 인간을 뛰어넘어 위협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AI의 통제를 위해 세계 정부를 구성하자는 안까지 내놓았다.

인공지능 창시자로 추앙받는 마빈 민스키 MIT(매사추세츠공대) 교수 역시 무신론자였다. 호킹보다 20년 앞서 태어난 그는 인간을 기계와 같이 취급했다. 민스키는 인간은 오로지 기계에 살을 붙인 생체기계(meat machine)에 불과하며 컴퓨터를 머리에 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감성은 기계가 약간 흔들리는 정도의 노이즈로 간주했다. 그는 AI가 영원한 삶을 줄 수 있다며 AI 연구자들에게 헌금을 줘야 한다고 역설하기까지 했다. 그에게는 자연법보다 더 강한 기계의 법칙이 존재했다.

AI를 보는 두 사람의 시각은 너무 달랐다. AI의 위협을 강조한 호킹에 비해 민스키는 인간이 기계인 이상 도움도 위협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엉뚱하면서도 깜짝 놀랄 만한 생각을 해 연구자들을 그쪽 방향으로 내몰았다. 1970년 블랙홀을 설파한 호킹은 1974년 만일 세상에 블랙홀이 존재한다면 양자물리학의 원리가 틀렸다고 주장했다. 양자물리학은 당시 원자보다 작은 세계를 설명하는 기본법칙이었다. 30년 동안 그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많은 물리학자가 실험에 매달렸다. 학자들은 나중에 그의 이론에 모순이 있다고 밝혀냈지만 이로 인해 이론물리학의 엄청난 발전이 이뤄졌다.

민스키 또한 기계로서의 인간을 설파함으로써 인공지능의 과제를 인간에게 던졌다. 지금의 AI 기술이 그의 이론 기반 아래 세워졌음은 물론이다. 호킹과 민스키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들은 심정적으로 동지 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일반적 상식에 도전하고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나가려는 프런티어십이다. 호킹 교수가 지난 14일 76세로 별세했다. 민스키는 2년 전인 2016년 타계했다. 호킹의 영면을 애도한다.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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