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호킹이 앓던 루게릭병… 초기엔 팔·다리 힘 빠지고 체중 줄어

입력 2018-03-16 18:49   수정 2018-03-31 06:56

이지현 기자의 생생헬스
'전신 마비' 루게릭병 증상은

뇌·척수 운동세포 서서히 파괴
10만명당 1~2.5명 정도 발병
남성 발병률 여성보다 최대 2.5배↑
밥 먹을 때 자주 사레 들고 기침
누워 있을 때 호흡곤란 심해져
진단 후 평균수명은 3~4년 정도

원인·치료법 아직 찾지 못해
발병 환자의 5~10%는 유전성
아직 명확한 발병 원인 못찾아
치료약도 생존기간 연장 효과뿐



[ 이지현 기자 ]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지난 14일 세상을 떠나면서 그가 앓은 루게릭병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1세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그는 2~3년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던 의사들의 예상을 깨고 55년 가까이 생존했다. 휠체어에 의지해 컴퓨터 음성재생장치 도움을 받아 열정적 연구활동을 계속해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됐다.

운동세포가 죽는 루게릭병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을 일컫는 말이다. 미국 뉴욕 양키스의 4번 타자였던 루 게릭(1903~1941)이 이 병에 걸린 뒤 사망해 그의 이름을 본떠 병명이 만들어졌다. 2014년 미국에서는 이 병에 걸린 환자들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아이스 버킷 챌린저(100달러를 기부하거나 기부하지 않는 사람은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것)’라는 사회운동이 확산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루게릭병에 관심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병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루게릭병의 증상과 치료법 등에 대해 알아봤다.


10만명당 1~2.5명 걸리는 희귀병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은 신경계 퇴행성 질환 중 하나다. 운동신경세포병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질환이다. 인구 10만 명당 1~2.5명 정도가 걸리는 희귀 질환으로 성인이 돼 주로 생기고 남성 환자가 여성보다 약 1.5~2.5배 많다. 50대 후반부터 발병하는 환자가 많다.

루게릭병은 뇌와 척수에 있는 뉴런이 손상되는 질환이다. 뉴런은 신경계를 이루는 기본 단위다. 인체는 뉴런을 통해 전기적, 화학적 신호를 전달하고 감각·운동·사고 등 복잡한 생명 활동을 한다. 뉴런은 뇌에서 척수로 명령을 전달하는 상부운동 뉴런, 척수에서 근육으로 명령을 전달해 근육을 움직이도록 하는 하부운동 뉴런 등으로 나뉜다. 이들 뉴런이 잘 작동해야 인체가 원활히 움직일 수 있다.

손가락을 움직여야 한다면 뇌는 상부운동 뉴런을 통해 손 근육을 움직이는 척수에 손가락을 움직이라고 명령한다. 척수는 손가락 근육에 신호를 보내 움직이도록 돕는다. 상부운동 뉴런이 망가지면 척수에 제대로 명령을 내리지 못한다. 하부운동 뉴런이 망가지면 척수가 근육에 명령하는 기능이 망가진다. 근육이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돼 점차 약해지고 근육 양이 줄어든다. 루게릭병은 이들 뉴런이 서서히 죽어가는 질환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은 물론 음식을 먹는 것, 숨쉬는 것 등 인체의 모든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진단 후 평균수명은 3~4년 정도다. 환자의 10% 정도는 증상이 점차 좋아지는 경과를 보이기도 한다. 어떤 치료를 받느냐에 따라 30년 이상 생존하는 환자도 있다. 하지만 어떤 환자가 무슨 이유로 장기 생존하는지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이처럼 무서운 루게릭병이지만 발병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유전, 면역기전, 감염, 신경미세섬유 기능이상 등이 상호 작용해 병이 생기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의료계에서는 루게릭병이 생기는 원인에 대해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연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체 루게릭병 환자 5~10%는 가계질환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들 중 20%는 21번 염색체에서 원인 유전자 돌연변이가 확인됐다.

유전성이 아닌 루게릭병은 세포가 유전자 제어를 받아 스스로 죽는 현상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특수한 바이러스 때문에 생길 수 있다는 가설, 환경 독소 때문에 생긴다는 가설 등이 보고되지만 명확하게 증명되지는 않았다.

루게릭병이 생기면 근력이 떨어지고 말더듬증, 삼킴곤란, 피로, 호흡곤란 등이 나타난다. 강성웅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전체적으로 서서히 사지 근육이 마비되고 결국 호흡근육이 마비돼 사망하게 되는 경과를 보인다”며 “발병 초기에는 팔과 다리에 서서히 힘이 빠지는 증상이 발생하다 곧 근육이 마르고 체중이 감소하는 환자가 많다”고 했다.

병이 진행되면 혀 근육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식사할 때 자주 사레가 들리거나 기침을 하고 밤에 잠을 자주 깨는 증상이 동반된다. 음식물이 식도로 넘어가지 않고 기도로 잘못 들어가 폐렴이 생기기도 한다. 가로막과 갈비 사이 근육이 약해지면 호흡곤란 증상도 나타난다. 횡격막 근육이 약해지면 누워 있을 때 호흡곤란 증상이 더 심해진다.

호흡재활, 삼킴 운동 등 도움

루게릭병으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뉴런이 손상됐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이 같은 뉴런 손상이 다른 질환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는 것도 밝혀야 한다. 병원을 찾으면 의사는 환자의 증상과 진행 정도 등을 파악한 뒤 신경전도검사, 근전도검사 등을 통해 신경과 근육활동에 문제가 있는지 등을 파악한다. 방사선 검사, 혈액검사 등도 필요하다. 다른 질환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받아야 하는 환자도 있다. 일부 환자는 유전자 검사로 진단한다.

루게릭병을 완치할 수 있는 치료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유전자 치료를 포함해 여러 방법을 시도하고 있지만 만족할 만한 치료법은 없다. 국내에서 루게릭병 환자 치료에 사용하는 치료약은 릴루졸과 라디컷 두 개뿐이다.

하지만 이들 약제 모두 생존기간을 수개월 정도 연장시킬 뿐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거나 근력을 키우는 데에는 큰 효과를 내지 못한다. 따라서 합병증을 예방하고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는 재활치료가 환자 생존율을 높이는 데 더 도움이 된다.

강 교수는 “병의 경과 중 발생하는 증상을 해결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호흡재활이 중요하다”며 “정기적으로 호흡기능을 평가하고 호흡곤란이 생기면 인공호흡기 사용을 포함한 호흡재활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했다.

박진석 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삼킴장애가 있는 루게릭병 환자는 일정한 농도와 질감이 있는 음식을 섭취하는 게 좋다”며 “여러 번 삼키기나 힘껏 삼키기 등 구강능력을 높이는 훈련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음식을 삼키는 연하기능이 손상돼 음식을 먹는 게 어려워지면 내시경을 이용해 복벽과 위에 구멍을 뚫어 영양공급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피부경유내시경위창냄술(PEG) 시행도 고려해야 한다.

bluesky@hankyung.com

도움말=강성웅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박진석 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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