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1일 LG아트센터서
[ 마지혜 기자 ]
이름은 ‘백조의 호수’지만 순백의 튀튀(발레리나가 입는 주름치마)도, 왕자도, 차이코프스키의 음악도 없다. 주인공은 화려한 성인식을 앞둔 왕자 ‘지그프리드’가 아니라 희망 잃은 실업자 ‘지미’다. 낡은 트레이닝복 차림에 모자를 눈썹까지 눌러쓴 채 맥주를 마시는 그의 눈빛은 초점을 잃었다. 현대 아일랜드의 음울한 현실은 동화처럼 아름답고 환상적인 배경을 밀어냈다. 꽉 짜여진 오케스트라 음악 대신 흥겹고도 구슬픈 색채의 아일랜드 민속음악 가락이 극장을 채운다.
오는 29일부터 3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백조의 호수’는 서유럽 끝자락에 있는 섬나라 아일랜드의 감성이 빚어낸 기묘한 무용극이다. 아일랜드의 공연예술가 마이클 키간 돌란이 춤을 짜고 연출했다. 2016년 10월 더블린 연극 페스티벌에서 초연하고 지난해 아이리시타임스 시어터 어워드에서 최고작품상과 의상상, 영국 내셔널댄스어워즈에서 최우수 현대무용 안무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사회적 고립과 정신질환, 음흉한 정치인, 부패한 성직자가 횡행하는 아일랜드의 현실을 풍자한다. 지미는 아일랜드 중부의 한 시골 마을에서 홀어머니와 사는 서른여섯 살의 실업자다. 정부의 주택 공영화 정책으로 집을 잃게 돼 실의에 빠진 그는 호수에서 총으로 자살하려 한다. 그때 지미 앞에 백조 네 마리가 나타난다. 원래 인간이었던 피놀라와 그의 동생들이다. 피놀라를 추행한 성직자가 입막음을 위해 이들을 백조로 바꿨다. 지미는 피놀라와 호수에서 춤추며 처음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주의원 미키는 주택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지미의 집을 방문했다가 총을 든 지미를 보고 혼비백산해 도망친다. 다음날 미키의 집에 경찰이 출동한다. 지미는 총을 갖고 집을 나와 호수로 향한다.
이 작품엔 세 가지 이야기가 녹아 있다. 남자 주인공이 호수에서 인간이었던 백조를 만나 교감을 나눈다는 플롯은 고전 발레 ‘백조의 호수’와 같다. 백조가 된 피놀라 자매 이야기는 아일랜드의 전설 ‘리어의 아이들’과 닿아 있다. 마법을 이용해 아이들 네 명을 백조로 만든 계모 이야기다. 지미라는 캐릭터는 2000년 아일랜드를 떠들썩하게 한 ‘존 카티 사건’에서 탄생했다. 우울증 병력이 있던 청년 카티가 농촌주택계획으로 집이 철거되는 데 반발해 경찰과 대치하다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이다.
배우 2명, 무용수 8명, 뮤지션 3명이 출연한다. 무용수들은 고전 발레와는 거리가 먼 자유로운 움직임을 선보인다. 백조들이 호수에서 추는 4인무, 지미의 생일파티에서 펼쳐지는 포크 댄스 등이 볼거리다. 모든 무용수가 백조 깃털을 무대 위에 날리며 춤추는 마지막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로 꼽힌다. 아일랜드의 유명 영화배우 마이클 머피가 성직자, 정치인, 경찰 등으로 1인 5역을 맡아 극을 이끈다.
니켈하르파(스웨덴의 민속 현악기)와 바이올린, 첼로를 연주하는 아일랜드의 3인조 밴드 ‘슬로 무빙 클라우드’가 무대에서 라이브로 연주한다. 노르웨이와 아일랜드의 전통 음악을 기반으로 한 흥겹고 서정적인 연주와 노래가 감정선을 주도한다. 영어로 공연하고 한국어 자막을 띄운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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