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 '생색내기'로 비춰질라
최대한 몸 낮추며 사회공헌
10년 단위 기념일마다 악재
[ 노경목/고재연 기자 ]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을 포함한 삼성그룹 전 계열사들이 오는 22일부터 한 달간 대대적인 사회공헌활동에 나선다. 그룹 창립 80주년(3월22일)을 맞아서다. 그동안 삼성이 성장하는 동안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 국민과 사회에 보답한다는 의미다. 사내외 분위기를 고려해 자체 축하 행사는 열지 않기로 했다.
18일 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삼성 계열사들은 22일부터 대대적인 사회공헌활동에 나서기로 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기간은 다음달 22일까지 한 달간이다. 이 기간 삼성 계열사들은 복지시설과 지역사회 등을 방문해 기부금과 물품을 전달한다. 일손이 부족한 곳에 임직원들이 직접 달려갈 수 있도록 방문 봉사 대상도 선정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해온 봉사와 차별화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체감할 수 있는 활동이 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행사는 삼성사회봉사단이 기획했다. 이후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이 해당 제안을 받아들여 전 계열사로 확산됐다.
삼성은 이 같은 활동에 대한 홍보 활동을 하지 않기로 했다. 자칫 보여주기식 행사로 오해를 살까 우려해서다. 삼성전자도 80주년 기념일 당일에 간단한 보도자료만 낼 계획이다. 계열사에도 “활동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지시가 전달됐다. 삼성 계열사 관계자는 “삼성이 성장한 지난 80년간 응원해 준 국민과 한국 사회에 몸과 마음으로 보답하는 한 달이 되도록 할 것”이라며 “활동이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언론 노출은 가능한 한 줄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봉사 활동 외에 창립 80주년 관련 외부 행사는 하지 않는다. 사내 방송을 통해 삼성그룹의 성장사를 되돌아보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각별한 의미가 있는 사진을 따로 모아 인트라넷에 게시하는 정도에 그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의 성장 과정을 잘 모르는 30대 초중반 이하 직원들을 위한 것”이라며 “내부 교육용에 가까워 80주년 관련 기념 이벤트로 보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삼성그룹의 역사는 1938년 3월1일 이병철 창업회장이 삼성물산의 전신인 ‘삼성상회’를 대구 인교동에 설립하며 시작됐다. 1988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이건희 회장이 ‘제2의 창업’을 선언하면서 창립일을 지금의 3월22일로 바꿨다. 80년이 흐르는 동안 삼성은 한국 최고·최대 기업이 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3조원을 벌어들였고, 상장된 계열사들의 시가총액은 유가증권시장의 30%를 웃돈다.
하지만 자축하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창립 기념일을 맞아 최대한 몸을 낮추는 분위기다. ‘최순실 사태’ 등의 여파로 삼성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갑다는 것을 의식해서다. 축하행사를 없애고 사회공헌활동도 최대한 감추는 이유다.
지난달 이재용 부회장 출소 당시 예상됐던 ‘제3의 창업 선언’도 하지 않기로 했다. 1987년 삼성그룹 회장에 오른 이 회장은 이듬해 50주년 기념행사를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대대적으로 열며 앞으로의 경영 청사진을 제시했다. 2014년부터 경영 일선에 나선 이 부회장은 구체적인 경영 방침을 내놓은 적이 없어 80주년 창립 기념일에 새로운 창업 선언을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됐었다.
삼성은 1988년 이후 10년 단위 기념일마다 악재로 기념행사를 열지 못했다. 1998년 창립 60주년은 외환위기로 위축된 사회 분위기를 의식해 그룹 차원의 기념식 없이 삼성물산만 축하 자리를 마련했다. 2008년 창립 70주년은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 따른 특검 수사로 축하 움직임이 전무했다.
노경목/고재연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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