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한국판 미네소타 프로젝트

입력 2018-03-20 17:45  

1955년 9월15일, 서울대 의대 소속 젊은 의사 12명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최종 목적지는 미네소타주(州) 세인트폴에 있는 미네소타대 의대. 미국 국제협력처(ICA)의 한국 재건 원조 프로그램인 ‘미네소타 프로젝트’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이 프로젝트(1955~1961)는 미국 정부가 1000만달러를 들여 한국 농·공·의학도를 교육시킨 프로그램이다.

미네소타대 의대에 파견된 한국 의사는 초기 12명을 포함해 모두 77명이었다. 영어가 서툴러 일상적인 대화도 힘겨웠지만 전란으로 폐허가 된 조국을 생각하며 사명감 하나로 밤낮없이 학업에 매달렸다.

당시 한국은 간단한 수술도 엄두를 내지 못하던 시기였다. 실험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플라스크(실험용 유리병)를 가슴에 품어 대장균을 배양할 정도로 연구 환경도 열악했다. 파견생들에게 의료 선진국 미국의 대학병원은 신천지였다. 서울대 기초의학 의료진은 현지 의사들로부터 세균과 바이러스 배양법을 배웠다. 외과의사들은 간단한 처치에서부터 심장 수술과 같은 고난도 기술도 익혔다.

미네소타대가 원조 프로그램을 맡은 것은 한국과의 남다른 인연 덕분이었다. 6·25전쟁 때 참전한 미네소타 출신 군인은 당시 주 인구의 약 5%인 9만5000여 명이나 됐다. 1950년 장진호(長津湖)전투에서만 이곳 출신 군인 4000여 명이 전사했다.

참전 용사가 많은 까닭에 미네소타 주민들은 전쟁고아들을 대거 입양했고,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한국 입양인을 받아들였다. 한때 미네소타 거주 한국 입양인은 3만 명을 넘었다. 미네소타주의 매년 10월 첫째 토요일은 ‘한국의 날’이다. 이날 한국 입양인과 양부모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다양한 행사를 벌인다.

미국에서 의료기술을 배운 한국이 이제는 의료 강국으로 도약했다. 매년 1000여 명의 외국 의사가 위암 수술과 간 이식 기법 등을 배우러 방한한다. 한국 병원들은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에 의술을 전하고 있다. 전수받은 의술을 ‘한국판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도상국에 되돌려주고 있다.

서울대 의대가 2010년부터 한국과 라오스에서 벌이고 있는 ‘이종욱-서울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재직 중 타계한 고(故) 이종욱 박사를 기리는 사업이다. 서울대 의대의 도움으로 라오스 국립 어린이병원에 암환자 진료실이 마련됐고, 지금까지 소아암 환자 100여 명이 치료를 받았다.

60여 명의 라오스 의료진도 최첨단 의료기술을 전수받았다. 미네소타 프로젝트 덕분에 한국이 의료 선진국으로 거듭났듯이, 이종욱-서울 프로젝트를 통해 라오스도 동남아 의료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길 기대해 본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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