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연봉 8천만원이 최저임금 대상인 '슬픈 희극'

입력 2018-03-21 17:54  

"양극화 심화시키는 최저임금 인상
산입범위 원칙 알기 쉽게 정하고
빈곤층 소득재분배 정책 집중해야"

조준모 <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



최저임금위원회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결정 논의가 불발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에서도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에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까. 고용파괴의 설상(雪上)에 가상(加霜)이 될 것이다.

2월 고용동향을 보면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이 큰 업종인 도매 및 소매업종 취업자, 사업시설관리·지원업종 취업자, 숙박 및 음식점업 취업자의 세 개 업종에서만 14만5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또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면 최저임금은 드디어 국가 표준임금으로 등극하게 된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자료에 의하면,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면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근로자는 44.3%로 추정된다. 여기에 주휴수당을 합치면 최저임금의 영향률은 50%에 육박하게 돼 우리 노동시장의 표준임금 기능을 하게 된다. 이 정도가 되면 우리 노동시장은 국가가 임금을 결정하는 계획경제의 진입을 목전에 두게 된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시장 양극화를 개선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 쉽다. 총액 연봉이 4000만원이 넘으면서도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통계치를 살펴보면 ‘기본급+1개월 단위 지급 고정수당’ 기준으로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근로자 중 연봉 7170만원을 받는 근로자도 존재한다. 여기에 나머지 수당을 합치면 연봉 8000만원이 넘으면서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근로자도 있다는 얘기다. 최저임금이 저임금 노동자 보호를 넘어서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임금결정 기제로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사업장에는 고용파괴를, 고임금 사업장에는 임금인상 수혜를 가져와 오히려 노동시장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역설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득분배 개선을 위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근로장려세제, 4대 보험 등 사회보장제도에 국가부담분 증가 등 소득분배 효과가 더 큰 정책들이 있는데도 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만 집착하는지 의문이다. 대기업 근로자 임금까지 인상시키는 최저임금보다는 빈곤층 또는 근로빈곤층을 목표로 하는 소득재분배 정책에 집중하는 것이 더 진보적인 정책이 아닐까.

필자는 현 시점에 당장 해야 할 방책을 제안하고자 한다. 국회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 시 일반인도 이해하기 쉬운 원칙을 제시했으면 한다. 1개월 단위로 지급하는 고정수당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하는 대법원 판례를 기본으로 하되 추가로 산입범위에 포함될 수당을 논의해야 한다.

예컨대 소정근로시간에 ‘정기적’으로, ‘정액’으로, ‘현금’으로 지급되는 수당은 산입범위에 포함하는 것으로 원칙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원칙을 따를 경우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는 11개 수당 가운데 연장근로·휴일근로·야간근로 수당, 식사·기숙사·주택·통근차 운행 등 현물지급 급여는 빠지고, 나머지 1개월 초과 정기상여, 근속수당과 현금으로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식대 등은 포함된다.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소송이 이어지는 통상임금 결정의 정기성·일률성·고정성 같이 개념이 모호한 기준을 최저임금 산입범위 기준으로 끌고 들어가면 최저임금 결정의 혼돈을 확산시키게 된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원칙은 노동법 전문가가 아니라도 현장 근로자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상태에서 변화가 없다면, 최저임금은 두 가지 시나리오 중 한 가지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3년 내 최저임금 1만원+생계형 근로감독 강화+고용 대량파괴, 그리고 두 번째는 노동시장 동향분석을 전제로, 3년 내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5년 내 1만원 등으로 정부가 연착륙시키는 시나리오다.

첫 번째보다 더 두려운 시나리오는 지방을 중심으로 불법, 탈법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우리 경제가 잘 인내했다”고 위정자들이 자위(自慰)하는 ‘슬픈 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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