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매파와 비둘기파

입력 2018-03-22 01:34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매는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가진 맹금류다. 조류의 먹이사슬 중 최강자이자 최고의 사냥꾼이다. 먹잇감을 발견하면 높은 곳에서 선회하다가 순식간에 하강해 낚아챈다. 주변을 천천히 돌면서 축적한 힘을 한꺼번에 발산하는 ‘우회축적의 원리’를 최대한 활용한다. 그 앞에서는 더 빨리 움직이는 새들도 속수무책이다.

비둘기는 매보다 여리지만 지구력이 뛰어나다. 시속 112㎞로 하루 10시간 이상 날아 1000㎞까지 갈 수 있다. 머리나 눈에 자성을 띤 물질이 있어 방향을 잃지 않는다. 특유의 귀소본능과 지구력 덕분에 연락용으로 자주 활용됐다. 2차대전에서 이긴 연합군이 통신용 비둘기를 심벌로 활용하면서 평화의 상징 새가 됐다.

정치 분야에서 강경론자들을 ‘매파’라고 처음 부른 사람은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다. ‘비둘기파’라는 표현은 베트남전쟁 때 등장했다. 교착상태에서 확전을 주장한 주전파(主戰派·공화당)를 매파, 한정된 범위에서 평화롭게 해결할 것을 주장한 주화파(主和派·민주당)를 비둘기파라고 불렀다.

경제 분야에서는 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경제정책의 관점에서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리고 통화량을 줄이자는 세력을 매파, 경제 성장을 위해 금리를 내리고 통화량을 늘리자는 세력을 비둘기파로 분류한다.

이들의 결정에 따라 실물경제가 민감하게 반응한다. 증권시장에서는 ‘황소’로 상징되는 상승장과 ‘곰’으로 상징되는 하락장이 출렁인다. 금리를 올려서 돈줄을 조이면 물가상승은 억제할 수 있지만, 경기 회복세에는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양측이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지만 역사적으로는 매파가 승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심리적 편향성을 보이면서 자기를 과신하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선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데도 이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된다는 얘기다.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국무장관을 매파로 바꾸는 등 안보라인을 강경 세력으로 교체했다. 대북 강경노선을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친정체제 구축에 따라 미·북 정상회담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매파와 비둘기파의 대립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안보 분야뿐만 아니라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통상 난제를 해결할 균형점도 찾을 수 있다. 매나 비둘기나 하늘을 나는 데에는 두 개의 날개가 필요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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