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나디엠 마카림 인도네시아 승차공유업체 고젝 CEO

입력 2018-03-22 16:55  

"스마트폰 터치하면 기사가 달려온다"
승차 공유·식품 배달로 소비생활 '혁명'
구글·삼성·텐센트 투자유치 이끌어



[ 박상익 기자 ]
글로벌 정보기술(IT) 거인 구글이 지난 1월 인도네시아의 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거액을 투자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구글은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 삼성벤처투자 등과 함께 승차공유 서비스 기업 고젝(Go-jek)에 투자하기로 했다. 구글의 투자 규모는 1억달러(약 1070억원)다. 그동안 꾸준히 자금을 투자받은 고젝은 기업가치가 5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고젝은 조만간 기업공개(IPO)에 도전할 계획이다. 오토바이 승차 서비스로 시작한 고젝은 이제 택배, 배달, 장보기, 미용, 전자결제 등 인도네시아 생활 전반에 깊숙이 자리잡았다. 2010년 고젝을 창업한 나디엠 마카림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승차공유 서비스 분야에서 앤서니 탄 그랩 CEO와 함께 동남아시아의 촉망받는 젊은 경영자로 주목받고 있다.

오토바이 승차공유로 사업 시작

1984년 변호사인 아버지와 비영리기구 직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마카림은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브라운대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취득했다. 이후 다국적 컨설팅기업 맥킨지의 자카르타지사와 독일계 IT기업 로켓인터넷 등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자신의 사업을 펼치고 싶었던 마카림은 인도네시아에서 일상화된 오토바이 운송 서비스에 주목했다. 수도 자카르타는 심각한 교통체증으로 악명이 높은 도시다. 퇴근시간이면 걸어서 한 시간 거리를 차를 타고 1시간30분 넘게 가야 할 정도다. 서민들은 움직임이 둔한 승용차 대신 오젝이라고 불리는 오토바이 운송 서비스를 선호했다. 마카림도 자기 승용차를 운전하기보다 오젝을 자주 이용했다. 어느날 오젝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거리에 한 시간 나와 있으면 그 중 70%는 손님을 기다리는 데 쓴다”는 말에서 사업 가능성을 발견했다.

오젝을 이용하려면 사람들이 자주 다닐 법한 길목까지 나와 기사를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고객과 오젝 기사를 간편하게 연결해주면 서로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 확신한 그는 2010년 자연스럽게 오젝이 연상되도록 고젝이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했다.

사업 초기에는 문자메시지와 전화라는 초보적 방식을 활용했다. 사업의 핵심이나 마찬가지인 오토바이 기사를 모집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기존 방식에 익숙한 기사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는 기사들이 모인 곳을 찾아다니며 커피와 담배를 돌렸다. 손님을 더 빠르고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설명에 기사들이 호응하기 시작했다. 2015년 본격적으로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을 출시하자 소비자들이 환호했다. 스마트폰 터치 몇 번이면 자신이 있는 곳으로 바로 기사가 달려온다는 것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창업 당시 20명 정도이던 고젝 기사는 이제 인도네시아 50개 주요 도시에서 40만 명이 활동하고 있다.

긱 이코노미 상징으로 떠올라

독립형 일자리를 뜻하는 긱 이코노미는 미국에서 형성된 개념이지만 동남아시아에선 예전부터 일상화된 개념이었다. 고젝은 오젝이라는 오프라인 기반 서비스를 온라인과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서비스가 아니어도 소비자에게 약간의 편의만 제공하면 판을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마카림은 “누구나 당신의 아이디어를 훔칠 수 있지만 실행력은 훔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고젝과 그랩바이크 같은 승차공유 서비스가 급성장하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각종 규제 도입을 검토했다. 버스 택시 등 기존 운송사업자에 비해 법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점에서였다. 그러나 의회와 헌법재판소는 시민편익과 시장경제 원칙을 이유로 전면 규제보다 합법화를 유도했다.

인도네시아 승차공유를 선도하게 된 고젝은 기사들의 소득 향상과 소비자의 편의를 높이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 결과 신선식품 배달, 소형 택배, 처방약 배송 등 다양한 물류 서비스를 개발했다. 인도네시아에선 1000원 정도의 이용료만 내면 고젝 기사가 스타벅스 커피를 배달해주고, 제휴 약국에서 조제약도 받을 수 있다. 가사도우미를 부르거나 머리를 감겨주는 서비스도 고젝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여기에 신용카드 사용자가 적은 시장 특성을 고려해 출시한 전자결제 서비스인 고페이도 인기를 끌고 있다. 구글뿐만 아니라 텐센트, JD닷컴, 라쿠텐도 고젝에 투자했다. 승차공유로 시작해 사람들의 소비 생활을 바꾸고 있는 고젝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서다.

맞다고 생각하면 행동해야 한다

그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동남아에서 선도적인 스타트업을 이끄는 차세대 글로벌 CEO로 주목받고 있다. 30대에 큰 기업을 일궈 무엇이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일 것 같지만 그는 반대로 “두려움이 실패할 용기를 가져다준다”고 역설한다. 두려움은 도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뜻으로, 처음부터 안전한 길만 찾으면 성공은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차세대 IT 기업가들은 열정적으로 도전해 실패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미국 유명 대학 출신에 하버드 MBA라는 이력에도 불구하고 조국 발전을 위해 인도네시아에서의 창업을 선택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인도네시아 스타트업에서 가장 부족한 요소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먼저 최적화니 검증이니 하는 것들을 시도하죠. 하지만 자신과 자신의 제품을 믿는다면 그 길을 계속 걸어야 합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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