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칠 때 떠난 김원규 NH투자증권 사장…평사원에서 사장까지 33년 외길

입력 2018-03-22 17:38   수정 2018-03-22 17:39



(윤정현 증권부 기자) “사랑하는 NH투자증권 가족 여러분”

22일 NH투자증권 서울 여의도 본사 4층 강단에 오른 김원규 NH투자증권 사장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는 겁니다”라는 첫마디에 강연장 객석을 채운 300여 명의 임직원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날은 1985년 당시 럭키증권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 임무를 마치는 날이었습니다. 업황의 부침이 심하고 이직이 유난히 많은 증권업계에서 33년을 한 회사에서 몸 담으며 외길을 걸어온 그이기에 더 감회가 남달랐을 겁니다.

한 직원은 “전체 직원 3000명 중 2000명은 자기가 사장과 친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직원들과의 스스럼 없이 소통했기 때문입니다. 김 사장은 신입사원 때부터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혀 한계단씩 올라갔기에 직원들의 마음을 우선 헤아렸고 먼저 다가갔습니다. 사장이 되고도 지방 지점들을 다 돌며 직원들 한명 한명과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경상북도 의성에서 태어나 집안 형편 때문에 대구상업고등학교로 진학한 김 사장은 낮엔 증권회사에서 일하고 밤엔 공부했습니다. 시세판에 분필로 주가를 적어넣던 고등학생은 대학 졸업 후 당시 럭키증권에 입사했습니다.

대구에서 대리 시절을 보냈고 27세 부지점장, 35세 되던 해엔 포항으로 가 지점장을 맡게 됐습니다. 최연소 지점장 기록도 그가 갖고 있습니다. 여의도 본사 1층 로비에서 열리고 있는 창립 50주년 사사(社史) 편찬기념 사진전에서도 수백장의 사진 속 김원규 과장, 김원규 부장, 김원규 상무의 모습을 차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날 퇴임식에서 김 사장은 2011년 LIG 기업어음(CP) 부도가 발성했을 당시가 33년 간의 직장생활에서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간 쌓아놓았던 고객과의 신뢰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는 WM사업부 대표를 맡고 있었습니다.

김 사장은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겠다는 자세로 수습을 해 나갔다”며 “고객의 성공없는 회사의 성장은 무의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고 말했습니다. “회사가 아니라 진정 고객을 위하는 선택을 해야 고객의 성공과 함께 회사도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시각을 넓히고 창의적으로 생각할 것도 주문했습니다. 김 사장은 “우리가 뛰어놀 운동장은 정책과 자본의 크기가 결정하겠지만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는 사고의 크기에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사장은 지난 2013년 우리투자증권 사장에 취임했습니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사장까지 오른 것은 우리투자증권 창사 이래 처음있는 일이었습니다. NH농협증권과의 합병 후 2014년 12월에는 NH투자증권의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이후 안정적으로 통합을 이끌었고 지난해는 사상 최대 순이익도 거뒀습니다. 이날 김 사장의 퇴임식을 찾은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도 “김 사장의 경륜이 있었기에 조직문화가 많이 다른 두 회사의 합병이 순탄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며 “지난해 실적까지 좋아 지주 내 계열사 평가에서도 S등급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딸과 아들의 졸업식에도 한번 가보지 못했고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었다”고 가족들이 불만을 토로할 정도로 지난 33년 간 회사를 집처럼 여겼던 그는 퇴임 후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고 합니다. 30여 년 만에 모처럼 가장 긴 휴가를 떠나게 될 김 사장의 ‘제 2의 인생’을 응원해 봅니다. (끝) /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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