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해빙 무드로 관심 살아나
2014년 '통일대박론'에 속속 출시
남북관계 경색되며 줄줄이 청산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자금유입 조짐
[ 이정흔 기자 ]
살얼음판을 걷던 남북관계가 최근 급진전되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해빙 무드가 조성되는가 싶더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도 가시화되고 있다. 남북관계에 모처럼 훈풍이 불어오며 ‘통일펀드’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2014년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에 힘입어 통일펀드 20여 종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다. 1990년 독일 통일을 전후해 독일 주식시장은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뒤 약 5개월간 주식시장 상승 폭만 40%다.
2014년 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 발언에 국내 증권가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했다. 통일 이후 북한 개발과 자원 활용, 북한 주민의 구매력 확대 등을 기대할 때 국내에서도 관련 기업들이 크게 수혜를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당시 신영자산운용을 비롯해 하이자산운용, 교보악사자산운용 등이 통일펀드 20여 개를 잇달아 출시했다. 신영자산운용의 ‘신영마라톤통일코리아펀드’, 하이자산운용의 ‘하이코리아통일르네상스펀드’, 교보악사자산운용의 ‘교보악사우리겨레통일펀드’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펀드는 대부분이 통일 이후 북한이 단계적으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수혜가 예상되는 종목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펀드가 출시된 첫해만 해도 투자자들의 관심이 꽤 높았다.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14년 3월 신영자산운용의 첫 통일펀드가 출시된 뒤 3개월 만인 같은 해 6월 설정액이 441억원에 달했고 2015년 6월에는 509억원의 자금이 유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2월 개성공단 폐쇄를 시작으로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얼어붙으며 통일펀드에 대한 관심 또한 사그라졌다. 통일펀드의 연평균 수익률은 2017년 11월 기준 14%대로 나쁘지 않았지만 설정액은 2016년에만 117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갔고 2017년에도 91억원이 줄어들었다. 결과적으로 3월16일 기준 총 21개의 통일 관련 펀드 중 설정액 10억원 이상 펀드는 단 4개에 불과하다. 신영자산운용 3개 펀드와 하이자산운용 1개 펀드다. 교보악사자산운용은 지난해 설정액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통일펀드를 청산했다.
제로인에 따르면 4개 통일펀드의 설정액은 290억원 정도다. 가장 덩치가 큰 ‘신영마라톤통일코리아C4’가 126억원 규모, ‘신영마라톤통일코리아I’가 93억원, ‘신영마라톤통일코리아A’가 55억원이다. 하이자산운용의 ‘하이코리아통일르네상스ClassC-I’의 설정액은 16억원이다. 수익률은 양호한 편이다. ‘신영마라톤통일코리아C4’의 최근 1년 수익률은 16.22%, ‘하이코리아통일르네상스ClassC-I’도 최근 1년 수익률 19.72%를 기록 중이다.
최근의 남북관계 개선에도 불구하고 통일펀드 미래는 불투명해 보인다. 하이자산운용이 연내 통일펀드 청산 방침을 결정했다. 하이자산운용까지 통일펀드를 청산하면 신영자산운용의 통일펀드만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신영자산운용 측은 ‘통일펀드 1호 브랜드’라는 점에 가치를 두고 장기 투자 관점에서 끌고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신영자산운용에 따르면 통일펀드에 미미하지만 자금이 유입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둔 1월 ‘신영마라톤통일코리아플러스’ 펀드에 1407만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신영마라톤통일코리아30’ 펀드에도 2804만원이 순유입됐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는 “통일펀드는 정치 테마 펀드가 아니라 ‘통일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조성된 장기적 관점의 가치 투자 펀드”라며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설정액과 상관없이 펀드를 청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흔 한경비즈니스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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