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전경련 패싱'이 사실이 아니라면

입력 2018-03-2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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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연 산업부 기자 yeon@hankyung.com


[ 고재연 기자 ] “초대장을 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참가 신청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아랍에미리트(UAE) 순방 때 경제단체 다섯 곳 중 유일하게 불참한 이유를 묻자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전경련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게 아니다”며 “대한상공회의소를 통해 모집했는데 전경련은 아예 신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대한상의가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회장직으로 있는 GS그룹에만 공문을 보냈고, 전경련에는 공문을 보내지 않은 것이다. 전경련이 자신을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라고 생각한 이유다.

정부의 ‘전경련 패싱’ 논란이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전경련 임직원들에게 임금 삭감보다 두려운 것은 ‘적폐’라는 사회적 비난과 그로 인한 무력감이다. 실제 이런 고통을 견뎌내지 못하고 법률사무소 등으로 이직하는 연구원도 생기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전경련 직원은 권태신 부회장과 배상근 전무를 중심으로 ‘신뢰 회복’을 위해 뛰고 있다. 미국 재계와의 탄탄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내 철강업계를 위해 대미 통상외교에 뛰어든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전경련과 협력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을 여섯 가지로 정리해 자사 홈페이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민간 외교’가 미국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5월에는 중소·벤처기업을 주제로 대만 타이베이에서 제43차 한·대만 경제협력위원회를 연다. 1968년 설립된 경제협력위는 1992년 양국 단교 이후에도 유일한 민간 협력체로 역할을 해왔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과 해빙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한국 입장에서도 대만의 외교적 중요성은 커질 전망이다. 정부의 공식적인 외교 채널이 없는 상황에서 전경련의 민간 외교 채널을 활용하면 어떨까. 올해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사절단을 꾸려 대만 국가개발위원회를 예방하고, 유명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방문한다고 한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한·대만 경제협력위에 참석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정부의 기조가 ‘전경련 패싱’이 아니라면 충분히 이용할 만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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