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힘겨루기 속 한반도 정세 '요동'
北·美회담 의견 나누고 제재완화도 요구
'차이나 패싱' 우려한 中과 이해관계 일치
전문가들 "고도로 계산된 북한의 전략"
[ 이미아 기자 ]
“북한이 미국과 중국 간 파워게임에 스스로 뛰어들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중국 베이징을 극비 방문한 데 대해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고도로 계산된 전략”이라며 이같이 분석했다. 김정은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면담한 것은 향후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에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북·중, 이해관계 맞아떨어져
최근 북·중 관계가 북한의 지속적인 핵·미사일 개발과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으로 나빠진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행보는 누구도 예상치 못할 정도로 파격적이다. 일단 김정은이 시 주석과 전격 면담한 이유는 북한과 중국 간 이해관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전 조율을 명분으로 중국에 가서 북·중 관계 회복과 제재 국면 돌파구 마련을 노렸다는 분석이다. 중국으로서도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이 소외되는 ‘차이나 패싱’ 논란을 불식하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맞서 한반도 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방중에 대해 “중국이 제1의 변수가 될 것이라 관측돼왔지만 북·중이 이렇게 빨리 만날 것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김정은이 미국과 중국 양측을 이용하는 ‘양다리 걸치기’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중국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대 변수가 되리란 건 예상했던 시나리오”라며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중요한 건 중국이 북한에 무엇을 제시했고, 북한이 어떻게 상황을 설명했으며, 우리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0년 5월 말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은 그해 6월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베이징을 방문했다.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벤트를 앞두고 중국과 항상 의논해왔다며 이번에도 북한이 먼저 요청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중국으로서도 미국 트럼프 행정부를 견제할 카드로 북한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신상진 광운대 교수는 “지난 26일 중국 관영 환구시보가 사설에서 ‘미국이 대만과 남중국해 카드로 무역전쟁에서 공격해 올 수 있지만 우린 한반도 등 국제무대에서도 미국의 각종 카드를 견제할 능력이 있다’고 밝힌 게 중요한 힌트였다”고 지적했다. 장기집권 토대를 마련한 시 주석이 미국의 외교안보 라인과 강하게 부딪치면서 북한을 지렛대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도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가장 믿을 만한 파트너인 중국을 통해 외교적, 경제적 돌파구를 찾아나선 것으로 보인다.
미·중 힘겨루기 격화 예상
김정은의 방중을 계기로 동북아 지역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간 힘겨루기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과 중국에 미국은 궁극적으로 ‘공동의 적’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를 계기로 ‘쌍중단(북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과 한·미의 군사훈련 동시 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을 더욱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량윈샹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김정은과 시 주석의 만남이 알려지기 전 홍콩 일간지 명보와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한 것이 사실이면 이는 중국이 여전히 한반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대외적으로 입증한 셈”이라고 말했다. 또 “김정은은 중·미 관계 악화를 기회로 중국 방문에서 상당한 수익을 얻으리라 기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외교가 관계자는 “이번 북·중 회담의 경우 양측이 꼭 만나야 한다는 절박함이 큰 상황이기 때문에 누가 먼저 만나자 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사전 조율을 하고 대북 제재 관련 유화책 마련에 동참해줄 것을 중국에 부탁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의를 확인한 뒤 북·미 정상회담에 대비한 대미 전략을 짜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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