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규제안 요구 한 목소리
국내 암호화폐 시장이 침체기를 겪고 있다.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정부의 무관심에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DB손해보험은 암호화폐 거래소 유빗에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빗은 지난해 11월 말 DB손해보험의 사이버배상책임보험(CLI)에 가입하고, 20여 일 후인 12월 19일에 해킹을 당해 투자자들에게 17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끼쳤다. 이후 유빗은 DB손해보험에 30억원 규모의 보험금 지급을 요청했지만, 사고조사 결과 약관 위반이 발견돼 거절당했다. 때문에 거래소 해킹으로 입은 손실 일부를 보험금으로 보상받길 기대했던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했다.
국내 암호화폐 시장 악재는 이뿐만이 아니다. 코인네스트, HTS, 코미드 등 중소 거래소 3곳은 고객의 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이달 초 검찰 조사를 받았다. 투자자들이 시장에 대한 신뢰를 잃으며 국내 암호화폐 시장 규모도 계속 축소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 침체를 극복하고자 업비트, 빗썸 등 대형 거래소들은 암호화폐 생태계 조성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는 최근 블록체인 관련 산업에 3년간 1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벌어들인 당기순이익(1093억원)에 맞먹는 액수다. 투자자 보호 조치도 속속 이어지고 있다. 불법 다단계 코인 신고자에 현상금 100만원을 제공하는 ‘다단계 코인 신고제’를 시작했고 4월부터는 한국형 암호화폐지수 ‘UBIC’도 도입한다.
빗썸도 암호화폐 저변 확장에 나섰다. 소셜미디어에 적용 가능한 P2P 플랫폼 'SNS페이(가칭)'를 출시하고 블록체인, 암호화폐 결제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29일 발표했다. ㈜한국페이즈서비스와 협력해 올해 상반기 중 오프라인 암호화폐 결제 시스템도 구축한다. 설빙, 토다이, 카페드롭탑, 양키캔들 등 전국 6000곳의 오프라인 가맹점을 시작으로 연내 8000곳까지 확장해 실생활에서 암호화폐가 쓰이도록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암호화폐 사기 5대 유형 안내 책자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고 보안의식 강화 메시지를 담은 영상광고를 제작하는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두 거래소의 행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신기술이 발전하려면 시장의 건강한 성장이 선행돼야 한다”며 “올해 초 정부의 규제 조치로 중국 자본이 모두 빠져나가 시장이 쪼그라들었는데 지속적인 악재로 더 침체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하루빨리 산업 진흥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놔야 한다”며 “민간 거래소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기에 정부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저 발버둥에 불과하다” 는 우려도 표했다.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는 시각도 있다. 해외에서 암호화폐공개(ICO)를 준비 중인 한 기업 대표는 “지난해 암호화폐가 이슈로 떠오른 덕에 많은 투자를 받을 수 있었고 코인 개발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면서도 “최근엔 고립무원이 된 느낌이다. 국내에서 활동할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산업을 육성하는 제도가 아니라도 좋다. 차라리 가혹한 규제라도 나와야 뭘 안해야 하는지 알 수 있지 않나”라며 “정부가 하면 안 되는 것과 해도 되는 것의 기준이라도 세워달라”고 호소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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