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털어주는 기자] 봄이 가기 전… 벚꽃보다 도다리쑥국

입력 2018-03-29 17:32   수정 2018-03-30 05:47

서울 다동 충무집


[ 김보라 기자 ] 봄 도다리, 여름 민어, 가을 전어, 겨울 방어.

20대 초반 겨울 막 회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 함께 택시만 타면 사계절 제철 생선 퀴즈를 읊는 선배가 있었습니다. 그땐 뭐라 말도 못했지만 속으론 얼마나 촌스럽게 느껴졌던지. 남부럽지 않은 식성을 자랑하면서도 누군가 싫어하는 음식을 물어보면 제일 먼저 나오는 답이 ‘물에 빠진 생선’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제철 생선 맞히기라니. 참 잔인하죠. 그 선배는 봄이 되자 “도다리쑥국 먹어야 한다”고 노래를 했습니다. 벚꽃 찾아다닐 시기에 ‘도다리쑥국’이라는 생소한 음식으로 봄을 맞이해야 한다니. 순식간에 세월을 거슬러 ‘아재’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봄맞이를 위해 강제 소환된 곳은 서울 다동 충무집. 그날 이후 기꺼이 아재가 되기로 했습니다. 슴슴하게 된장을 푼 육수에 살며시 몸을 담근 뽀얀 도다리와 바닷바람 맞으며 자랐다는 향긋한 ‘해쑥’, 김과 쓱쓱 비벼 먹는 바다 내음 가득한 멍게밥까지. 음식을 먹을 때 미각보다 후각이 더 즐거운, 아주 기이한 경험을 했습니다.

충무집은 제철 횟집으로 이름난 오랜 맛집입니다. 통영에서 매일 올라오는 생선을 적당히 숙성해 회나 무침, 구이 등으로 내놓죠. 1년 내내 시끌벅적하지만 도다리쑥국과 멍게밥, 멸치회까지 제철인 지금이 가장 붐비는 계절입니다. 서울엔 공덕동 남해바다, 신사동 충무상회, 신림동 갯바위 등 도다리쑥국을 하는 집이 꽤 있지만 아직 충무집의 맛을 따라오는 집은 못 찾았습니다. 광어와 도다리도 구분 못하던 사람이 그 후 도다리 박사가 될 정도였으니까요.

도다리는 원래 경남 남해 통영 거제 등 남해안 사람들이 먹던 제철 음식이라고 합니다. “겨울 추위를 이긴 야생 쑥에 연한 봄 도다리를 된장 풀어 먹으면 1년 내내 잔병도 없다”는 남쪽 사람들. 도다리와 광어는 비슷하게 생겨서 구분법도 참 많습니다.

생선을 마주봤을 때 눈이 왼쪽에 있으면 ‘왼쪽’이 두 음절이니 ‘광어’. 눈이 오른쪽에 있으면 ‘오른쪽’이 세 음절이니 도다리. 광어는 이빨이 있고 도다리는 없답니다. 고수들은 몸통의 점박이만 보고도 구분하고요. 광어가 대부분 양식인 반면 도다리는 양식이 거의 없습니다. 인공 사료를 안 먹어 1~2년 키워도 잘 크지 않아 굳이 양식을 할 필요가 없다고. 그 외에도 자연산 도다리에 각종 비타민과 단백질, 콜라겐까지 많다고 하는데…. 몸에 얼마나 좋은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10년이나 지나서 생각합니다.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제철 생선을 집요하게 찾는 것. 어쩌면 무의미하고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음식으로나마 붙잡아보려는 건 아니었을지. 그 선배에게 문자나 한번 보내봐야겠습니다. 올봄엔 도다리쑥국 먹었느냐고.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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