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출자란 계열사 간 상호 출자를 통해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공격적 M&A에 견딜 수 있고 투자여력을 늘릴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소수의 지분을 가진 총수 일가가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부가 각 기업에 순환출자 구조를 빨리 해소하라고 압박을 해온 것도 후자 쪽과 관련이 있다.
문제는 정부 의도대로 기업들이 순환출자를 해소할 경우, 전자 쪽의 긍정적인 측면을 살릴 수 있는 보완책 마련일 것이다. 지배구조 선진화에 맞춰 기업 활동을 옥죄어온 규제를 풀어줌으로써, 이들이 미래 사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그룹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우리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자본시장을 완전히 개방했다. 외국자본의 적대적 M&A에 취약하다. “마땅한 경영권 보호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오랜 세월을 두고 자생적 방어 차원에서 만들어진 게 순환출자”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일본 기업들도 적대적 M&A에 대비해 상호출자를 통한 계열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차등의결권(특정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제도) 등 경영권 방어제도를 갖고 있다. 미국 역시 1980년대에 일본 자본 진출에 맞서 포이즌필(적대적 M&A가 발생했을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회사 신주·新株를 싸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을 도입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자기주식 취득 외에는 효율적인 방어수단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상법개정안에서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 등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주주가 불법 행위를 한 자회사 임원에게 소송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집중투표제는 선임 이사수만큼 투표권을 갖고, 특정인에게 몰표를 줄 수 있는 제도다. 둘 다 취지와는 달리 경영권 공격에 활용될 수 있다. 순환출자가 해소된 상황에서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 우리 기업들이 받는 역차별은 더욱 심해진다. 경영권 방어 외에도 순환출자를 전제로 한 다른 대기업 규제에 대해서도 전향적 접근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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