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양성도 적정 간호도 언감생심
인건비만큼은 보장하는 건강보험이어야
방문석 < 서울의대 교수·재활의학 >
지난해 12월부터 적용된 ‘전공의(專攻醫) 특별법’과 ‘간호사 태움 문화’ 및 열악한 근무 여건과 관련한 인력 수급 문제가 의료계 현안으로 떠올랐다. 전공의의 격무에 의존하던 대형병원의 진료 행태는 당장 문제가 돼 병원마다 대책 마련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전공의를 사회에 필요한 인력으로 교육하기보다는 값싼 인력으로 여긴 업보인 셈이다.
30년 전 필자가 수련받던 시절에는 도제식 교육 아래에서 스승과 제자, 선후배 간 위계질서가 강했다. 며칠씩 잠을 못 자고 끼니도 거르며 진료하는 것을 당연시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권위주의 문화도 많이 사라져 그런 수련 관행이 유지될 수 없게 됐다.
한국은 전공의 특별법을 국회와 정부가 입법화를 주도했다. 미국은 소비자단체의 주장이 전공의 수련 개선의 시발점이 됐다. 연속 당직의 격무에 시달린 전공의에게 진료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이 미국 소비자들의 주장이었다. 이에 따른 규정을 정부가 아니라 미국 의학교육협회 주도로 마련한 것도 한국과 다르다. 전공의 급여와 교육 비용의 대부분을 사회가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주(州)나 시 당국이 제공하는 것도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저(低)수가 의료보험에 대응하기 위해 값싼 인력을 고용하려는 한국과는 병원 문화가 다르다. 미국은 사회에 필요한 인재 양성이라는 측면과 소비자 입장에서 전공의 관련 규정과 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전공의 특별법 적용 이후 일부 병원에서는 전공의 대신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펠로(전공의 수련 후 의사)를 대체인력으로 혹사시키거나 전문의에게 과도한 당직 요구를 해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전공의 특별법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이런 문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의료수가의 결정이 값싼 전공의 인건비에 기반했으니 당장 의료수가 원가 산정부터 다시 해야 하고, 대체인력에 대한 합리적인 계획을 내놔야 하는데 남의 일 보듯 하는 모양이다.
간호사의 열악한 근무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대학 증설, 입학정원 확대를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의하면 인구 10만 명당 간호 계열 졸업자 수는 한국이 가장 많아 일본의 2배를 웃돈다. 일본은 우리가 시범사업을 겨우 하는 ‘보호자 없는 병원’인 포괄간호를 이미 실시하고 있으니 간호사 배출이 부족한 게 원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지금처럼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환자당 간호사 비율과 열악한 3교대 근무 행태의 개선이 없으면 일선 현장에서의 업무 피로도는 여전할 것이고,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목 아래 소위 태움 문화의 근절도 어려워질 수 있다. 아무리 대학과 정원을 확대한다고 해도 ‘장롱 면허’만 늘어날 뿐이다. 우리나라 간호사의 고용과 처우는 전적으로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좌우된다. 당장 병상당 간호사 수 확대와 근무조건 개선을 위한 건강보험 수가체계를 개편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진찰료는 원가의 75%라는 얘기를 한다. 진찰료의 원가를 계산하는 의료행위의 상대 가치가 낮게 책정된 탓이라고 한다. 의사의 의료행위 가치가 낮게 평가됐으니 간호사와 다른 보건 직종은 더욱 더 낮게 책정됐으리라 추정된다. 의료행위에 대한 보상이 원가에도 못 미치면 의료기관은 사람을 적게 쓰고 기존 인력의 노동 강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 경영을 위한 과다한 외래 진료 환자 수의 유지는 ‘3분 진료’를 낳고 과도한 비급여 진료를 유도하게 된다. 병상당 부족한 간호사 수는 환자 간호에 보호자를 동원하는, 다른 선진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관행을 낳았다.
지금이라도 우리 경제 수준에 맞게 적정 진료와 간호를 보장하는 의료보험제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보건의료인력 고용을 늘려 누군가 아프면 온가족이 고생하지 않고도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적어도 인건비는 100% 보장하는 국민건강보험을 만들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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