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한 대표가 떠안는 돈
작년 평균 3억5600만원
"금융기관 부실 커진다"
中企 자금규모 축소 우려
신용심사 기준 강화될 듯
'좀비 기업' 구조조정 계기
[ 문혜정 기자 ] 회사가 망했을 때 중소기업인에게 무한책임을 묻는 연대보증 제도가 2일부터 사실상 폐지 절차에 들어갔다. 정책자금을 제공하는 금융 관련 공공기관은 이날부터 모든 법인 대표에게 연대보증 의무를 면제해준다. 은행도 순차적으로 연대보증을 없앨 계획이다.
정부는 기업인의 부담이 줄어들고, 사업이 망해도 재기가 수월해져 창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계는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금융회사의 부실이 늘고, 신용보증이나 기술보증을 받지 못하면 오히려 더 어려워지는 기업이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패 두렵지 않은 창업환경”
중소기업에 보증을 전제로 대출해주거나 정책자금 대출을 해주는 중소기업진흥공단,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등은 이날부터 연대보증제를 폐지했다. 대신 신용이나 기술을 근거로 한 보증을 늘릴 계획이다.
기술보증기금은 이날 올 한해 7조7000억원의 보증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기존 대출분의 연대보증은 5년간 유지된다. 갑작스러운 제도 변화로 보증을 선 기업이 어려워져 과도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중소 벤처기업들은 그동안 사업 실패에 따른 창업자의 부담이 지나치게 높았다는 점에서 환영하는 분위기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한 기업의 대표가 떠안은 부담액은 평균 3억5600만원(보증에 대한 대위변제 3억여원+조세 체납 3700만원)에 달했다. 신용보증기금이 집계한 법인채무도 평균 4억7000만원(2016년 기준)으로 개인채무(2억3000만원)보다 두 배 이상으로 많았다. 한 번 사업에 실패하면 본인뿐 아니라 가족의 생활도 망가지고, 재기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창업은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과정’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김경만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연대보증 폐지는 중소기업계에서 오랫동안 요구해온 사안”이라며 “민간 금융권에도 이른 시간 내에 전면 시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계 중소기업 구조조정 이어질까
금융회사의 부실은 커질 수밖에 없다. 20조원 정도의 대출보증을 선 기술보증기금은 연간 대출자가 상환하지 않는 비율이 평균 4.5%에 달한다. 8000억~9000억원 규모다. 이 중 2000억원을 연대보증이나 법인 자산 회수 등을 통해 거둬들였다.
기술보증기금 관계자는 “기술력을 중심으로 신용도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지만 연대보증이 폐지되면 부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공급 규모 축소, 신용심사 기준 강화, 대출 거부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출에 보증을 세우는 문화가 금융권에는 팽배하기 때문이다. 금융회사 손실이 커지면 중소기업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어 자금줄이 막히는 기업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자연스러운 중소기업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신용과 기술이 없으면 보증부 대출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한계기업을 정리하는 기회가 될 것이란 얘기다.
이를 통해 경제 규모에 비해 과도한 신용보증 규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속적으로 신용보증 규모 축소를 주장해왔다. 2016년 기준 공공기관의 보증 규모는 83조8000억원에 달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3.91% 정도다. OECD 평균 0.6%를 한참 웃도는 수준이다. 연대보증 폐지가 신용보증 축소로 이어지면 정책자금으로 연명하는 회사가 그만큼 줄어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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