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 못한채 늙어버린 브라질… 연금 퍼주다 재정파탄 위기

입력 2018-04-02 19:55   수정 2018-04-03 06:38

"선진국 진입 물건너 갔다"
노동인구 줄고 부양인구 늘어
1년 예산 절반 가량 연금에 지출
인프라·교육에 투자할 돈 없어

경찰 월급 못줘 치안 마비인데
공무원은 퇴직前 월급만큼 받아

여론에 밀려 연금개혁 결국 무산
국가신용등급 강등…위기 가속



[ 뉴욕=김현석 기자 ] 브라질은 국가 예산의 43%를 연금에, 7%를 의료 지출에 쓴다. 경제 성장의 기반인 교육과 인프라 분야엔 각각 3%만 투자한다. 급격한 고령화와 출산율 감소로 연금 지출액이 급증하자 다른 곳에는 쓸 돈이 없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현지시간) “연금 부담 증가와 출산율 저하 등으로 선진국이 되기도 전에 늙어버린 신흥국이 늘고 있다”며 “이들 국가의 선진국 진입은 요원한 일이 됐다”고 보도했다. 브라질뿐만 아니라 아시아·남미의 여러 신흥국에서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로 일하는 근로인구보다 퇴직자가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성장 멈춘 채 조로하는 신흥국

고령화는 미국 등 선진국이 먼저 겪었다. 하지만 선진국은 이미 광범위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충분한 성장을 이뤘다. 브라질은 상황이 다르다. 주택 도로 지하철 등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 수도인 상파울루만 해도 인구는 뉴욕보다 40% 많지만, 지하철 길이는 5분의 1에 불과하다. 하수의 절반 이상이 처리되지 않은 채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성인들의 평균 교육기간은 8년에 그친다.

성장하기 위해선 인프라와 교육 등에 투자해야 하지만 급증한 연금 지출 탓에 불가능하다.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는 문제를 더 심각하게 하고 있다. 유엔은 2050년까지 브라질 등 중상위 개발도상국의 연금수령자 1명당 근로자 비율이 2.5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2015년의 7명이던 것이 35년 뒤면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다는 예상이다. 유엔은 세계 국가 중 일본만이 비슷한 기간에 비슷한 수준의 변화를 겪었으며 그 사이 일본은 세계 최대 채무국 중 하나가 됐다고 전했다.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연금 및 의료 시스템에 큰 변화가 없다면 브라질의 국가 부채가 2050년 국내총생산(GDP)의 307%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함께 고령화 및 출산율 감소를 겪고 있는 중국(274%), 러시아(262%), 사우디아라비아(341%) 등도 비슷한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몇 년간 재정 위기를 겪은 이탈리아의 순부채가 GDP의 120% 정도다. 마르코 멀스닉 S&P 애널리스트는 “이런 수준이라면 이들 국가의 국채는 정크본드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금에 짓눌려 지방정부 파산 속출

브라질에선 남성은 55세부터 퇴직 전 임금의 70%, 여성은 50세부터 53%를 연금으로 받는다. 이 때문에 남성은 평균 56세, 여성은 평균 53세에 은퇴한다.

이런 제도는 1988년 헌법에 모든 사람이 퇴직 급여와 의료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이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 의무라고 규정하며 시작됐다. 인플레이션이 매우 높았던 시기엔 실질적 혜택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2003년 좌파 정부가 들어서며 연금 혜택을 확대했다. 석유와 철광석 값이 올라 재정 수입이 늘자 정부는 수백만 명의 농민과 지하경제 종사자에게도 연금을 줬다. 공무원 연금은 더 관대하다. 민간 퇴직자는 상한이 있지만, 공무원은 퇴직 시점의 봉급과 동일한 급여를 받는다.

이 때문에 브라질은 이미 GDP 대비 13.1%에 달하는 돈을 연금 지출에 쓰고 있다. 국민 중 65세 이상 비율이 두 배 이상 많은 그리스와 거의 같다.

리우데자네이루주는 65세 이상 주민이 11%에 불과하지만 현직 공무원보다 더 많은 퇴직 공무원이 이미 연금을 받고 있다. 민간 퇴직자는 한 달 1700달러 상한선이 있지만 공무원은 이마저도 없다. 인플레이션이 높던 시대에 퇴직한 공무원들은 평균 월 1만달러를 받는다.

◆포퓰리즘 탓에 개혁정책은 실종

이 때문에 리우주정부는 파산 상태다. 경찰에 월급을 주지 못하면서 지난 1월 리우시 일대에서 688건의 총격전이 발생해 146명이 사망했다.

보다 못한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달 리우주에 4000여 명의 군병력을 투입했다. 이뿐만 아니다. 학교는 주기적으로 문을 닫으며, 병원은 주사기 등 각종 의료품을 살 돈이 없다. 주정부의 지출 중단으로 하수 처리장과 도로, 올림픽 경기장 등은 엉망이 됐다.

테메르 대통령은 지난 1년간 연금 개혁을 추진해왔다. 수령 연령을 55세에서 65세로 10년 늦추고, 연금보험료 최소 납부기간을 15년에서 25년으로 늘리는 개혁안을 마련했으나 지난 2월 연방의회는 오는 10월 선거 이후로 표결을 미뤘다. 시민들이 격렬히 시위를 벌이며 반대한 탓이다.

2월 연금개혁이 좌절된 뒤 S&P는 브라질의 국가신용등급을 ‘BB’에서 ‘BB-’로 내렸다. 피치도 ‘BB’에서 ‘BB-’로 강등시켰는데, 역시 연금 부담이 이유였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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