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진화의 반전 '역(逆)종분화'

입력 2018-04-03 00:34  

고두현 논설위원


스위스 베른대 연구진이 담수호 17곳에 사는 흰송어류의 생태 변화 과정을 오랫동안 추적했다. 흰송어는 종(種)에 따라 서식지와 먹이, 짝짓기 시기가 다르다. 아가미갈퀴가 성글고 몸집이 큰 흰송어는 호수 가장자리에 알을 낳는다. 아가미갈퀴가 촘촘한 작은 흰송어는 깊은 물에 알을 낳는다.

호수가 오염되면서 깊은 물속의 산소 농도가 낮아지자 알을 낳을 수 없게 된 작은 흰송어는 점차 사라졌다. 대신 큰 흰송어는 아가미갈퀴가 성글어지는 등의 변화를 보였다. 조사해 보니 큰 흰송어 속에 작은 흰송어 유전자가 들어 있었다. 산란지를 잃은 작은 흰송어가 큰 흰송어 영역으로 넘어가 교잡하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긴 것이다.

연구진은 2012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를 ‘역(逆)종분화(speciation reversal)’라는 메커니즘으로 설명했다. 역종분화는 한 종이 새 종으로 갈라지는 종분화 현상과 반대로 다른 종이 합쳐져 하나의 종이 되는 것을 말한다.

최근에는 미국 메릴랜드대 연구진이 큰까마귀 무리에서 역종분화의 증거를 찾아냈다. 이들은 북미 지역에 서식하는 대형 텃새인 큰까마귀를 분석한 결과 100만 년 이상 유전적으로 갈라져 있던 두 개의 다른 무리가 하나로 통합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진화의 과정을 나뭇가지 모양의 ‘수형도(樹形圖)’로 그려왔다. 나뭇가지가 갈라지듯이 종이 분화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생태 변화를 모두 설명할 수 없게 됐다. 역종분화는 여러 가지가 다시 합쳐지면서 그물 모양으로 얽힌다고 해서 ‘망상진화(網狀進化)’라고도 부른다.

놀라운 것은 역종분화의 대표적인 사례가 인간이라는 점이다. 지난 수십 년간의 논쟁 중 하나는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와 다른 종(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인가, 같은 종(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인가 하는 것이었다.

한동안은 네안데르탈인이 유럽과 서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다 4만 년 전 멸종된 사람 속의 한 종으로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이 아니라는 학설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게놈 해독 결과 네안데르탈인이 우리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와 교잡을 통해 1.8~2.6%의 유전자를 남겨줬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로는 상황이 역전됐다.

생물의 비밀은 이렇듯 단순한 ‘진화’의 개념만으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진화론을 주장한 것도 불과 150여 년 전 일이다. 게다가 수많은 검증을 거쳐 증명된 ‘법칙’이 아니라 하나의 ‘론(論)’일 뿐이다. 무한한 우주와 생명의 신비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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