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등 한국 산업 피해 커질 수도
전면 충돌 없이 원만히 타협하길"
김영훈 < 대성그룹회장, 세계에너지협의회 회장 >
세계 경제가 미국발(發) 보호무역주의 격랑에 휩쓸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500억달러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발표하면서 “미국은 역사상 유례없는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이는 제어범위를 넘어서고 있다”며 위기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비롯한 대미(對美) 무역흑자국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공세를 펴는 이유를 심각한 무역불균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는 물론이고, 국제경제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국의 만성적 무역적자가 새삼스러울 것도, 특별히 문제될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본다.
예일대 교수였던 로버트 트리핀이 1960년대에 제기한 이른바 ‘트리핀의 딜레마’에 따르면, 기축통화인 달러 발행국인 미국은 세계경제 규모가 커지는 만큼 달러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는 미국이 기축통화 발행국으로서 만성적 무역적자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운명이라는 의미다. 미국이 공급한 달러는 무역흑자국들로 흘러간 뒤 이들 국가가 미국 국채나 증권, 부동산 등을 매입함으로써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미국은 1970년대 중반 이후 국제무역에서 만성적으로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자본수지에서 흑자를 유지함으로써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세계 경제가 굴러가는 방식이다. 다만, 미국으로서는 무역적자가 심화돼 달러가치가 하락, 기축통화로서의 지위가 위협받지 않도록 균형점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 당선 전 오랜 기간 경영활동을 해온 데다 세계적인 경제전문가들의 조언을 받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구조를 모를 리 없다고 본다. 더욱이 최근 미국 경제가 호황을 맞고 있어 달러화 가치가 상승하는 시기에 이처럼 위기론을 앞세워 대외 공세를 펴는 것은 경제적인 목적 외에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공화당에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거나,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외교적 조치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과거 경험으로 미뤄볼 때 관세를 통해 미국 내 산업과 일자리를 지키는 정책이 별로 효과가 없었다는 점이다. 한 예로, 2009년 미국이 중국산 타이어에 대한 반덤핑 조치로 최고 35%의 수입 관세를 부과한 적이 있다. 이로 인해 한시적으로는 미국산 타이어 생산이 늘고 1200명의 일자리를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 내 타이어 소매가격이 급등해 결국 미국 소비자들이 일자리 하나를 지키는 데 평균 약 90만달러를 추가 부담했다는 분석이 나오며 정책실패 논란이 일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나라에서의 타이어 수입이 빠르게 늘어 결국 의도했던 일자리 효과도 거의 사라져 버렸다. 찾아보면 이와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가 무엇이든 이런 무역전쟁의 여파가 미국과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두 나라를 최대 교역국으로 두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문제다. 가전, 태양광, 철강, 자동차 등 여러 산업분야가 미국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과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결과로 인해 상당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앞으로 지식재산권 분야로 무역전쟁의 영역이 확대되면 정보기술(IT) 등 첨단 산업분야까지 선의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글로벌 경제는 국경과 산업분야의 경계를 넘어 하나의 정교한 시스템이라 할 만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본격적인 무역전쟁이 시작되면 미국은 수입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과 기업들의 비용 증가 등 적지 않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국 또한 대미 의존도가 높은 만큼 손실이 막대할 것이다. 이렇듯 미국과 중국 모두 전면적인 무역전쟁만큼은 피해야 할 처지이기 때문에 원만한 협의를 통해 빠르게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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