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데이터 네거티브 개방 원칙 지키고
개인정보·클라우드 활용 규제 완화해야
이인실 < 서강대 교수 >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란 데이터 분석업체가 5000만 명이 넘는 페이스북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수집하고 선거에 활용했다는 뉴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21억 명의 사용자가 남긴 데이터를 비즈니스 모델화해 연 400억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리는 페이스북이 ‘페이크북(fakebook)’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과 더불어 ‘데이터가 돈’이란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 1세기도 안 되는 사이에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디지털·정보·통신 혁명을 겪으며 한때 ‘정보기술(IT) 강국’이란 칭찬을 들었다. 하지만 이젠 ‘데이터 후진국’이란 오명을 써야 하는 신세가 됐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가 작년 9월 제시한 혁신성장 주요 대책에는 빠졌던 공공데이터 개방 정책이 지난달 ‘정부 혁신 종합추진계획’에는 포함됐다. ‘공공데이터 네거티브 개방 원칙’을 강화한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정부 사업을 연속성 있게 추진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한국 경제가 IT와 모바일의 세상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데이터 테크놀로지(DT)’ 시대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위기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가 밝혔듯이 공공데이터 개방의 궁극적 목적은 데이터를 활용한 창업이 활발히 이뤄져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가 활성화되도록 하는 데 있다. 빅데이터와 클라우드를 활용한 상거래 분석으로 중국 같은 거대한 국가에서 현금 없이 소비가 가능한 ‘알리페이(온라인 간편결제시스템)’ 세상을 구현한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 회장이 “데이터를 활용해 돈을 버는 것이 미래의 핵심 가치가 될 것이며 이제 IT 시대에서 DT 시대로 가고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데이터를 그냥 쌓아두기만 하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요즘 나오는 신기술 기반의 서비스는 모두 데이터 분석 기반 서비스다. 각자 새롭고 창의적인 시각을 더해 데이터를 새로운 가치 창조의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미 세계가 데이터 패권 전쟁에 나서는 상황에서 공공데이터 개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점에서 그동안 정부 대처는 안이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2013년 10월 ‘공공데이터법’ 시행 이후 공공데이터 개방을 확대해온 것 치고는 데이터 활용 결과가 너무 빈약하다.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민간 비즈니스는 규모가 영세하고 분야도 여행·교통·부동산 정보 등에 치우쳐 있다. 심하게 표현하면 실적을 올리는 차원에서 그냥 수집한 공공데이터를 단순 가공해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올해 처음 발표한 디지털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63개국 중 19위지만, 빅데이터 사용 및 활용 능력은 56위로 최하위란 점을 보면 그 수준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정부가 공공데이터 개방을 크게 확대한다고 하니 반가우면서도 과거 행태가 반복될까 걱정이 앞선다. 국무총리실 소속 공공데이터 전략위원회를 두고 행정안전부가 공공데이터 개방을 주도적으로 맡아서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각자 방식대로 공개할 뿐이다. 지난 정부가 표방한 ‘정부 3.0’을 넘어서 민간이 공공데이터를 자유롭게 활용해 신규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상세 정보를 더 제공하고 표준화하는 데이터의 품질 제고 노력이 절실하다.
시민단체들이 비식별정보마저 공개를 막고 있는 현실에서 정보 민감성을 고려해 보호 수준을 차별화하고 산업적 활용 시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등의 법적 기반을 정비해야 한다. 기업의 개인정보 이용 요구와 자기정보통제권인 개인정보 보호 간의 균형을 데이터의 생명주기단계, 조직 범위, 데이터 민감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옵트인(opt-in)·옵트아웃(opt-out) 방식을 적절히 적용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옵트인은 정보 제공 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고, 옵트아웃은 거부 의사가 없다면 개인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방식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OECD 국가 최저 수준에도 못 미치는 클라우드 활용과 관련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공공데이터 관리 혁신을 통해 DT 시대의 서비스 혁신 경쟁력을 높이지 않는다면 공공데이터 개방은 ‘페이크(fake·가짜) 혁신’이 될 것이다. insill723@sogang.ac.kr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