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를 꿈꾸는 잔혹극

입력 2018-04-03 18:10  

김영탁 씨 소설 '곰탕' 출간


[ 심성미 기자 ]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마흔을 앞두고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그리웠다. 아버지가 살아있던 때로 한 번만 돌아가 그가 좋아하던 곰탕 한 그릇만 같이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설 《곰탕》(아르테)의 창작은 그렇게 시작됐다. 영화 ‘헬로우 고스트’ ‘슬로우 비디오’ 등 따뜻한 감성 영화를 연출해온 김영탁 감독의 첫 소설이다.

소설은 2063년 부산에서 시작된다. 고아원에서 자라 식당 주방보조로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우환은 어느 날 식당 주인에게 다소 뜬금없는 제안을 받는다. 시간여행을 해 과거로 돌아가 2063년에는 사라져버린 음식 곰탕 맛을 배워오라는 것. 시간여행을 갔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기에 위험천만한 제안이다. 우환은 “이렇게 사나, 그렇게 죽으나 다를 게 없는 인생”이라며 제안을 받아들인다.

13명 만석의 배에 올라탔지만 검푸른 바다를 건너 2019년 부산에 도착했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우환을 포함한 두 명뿐. 우환은 허름하지만 깔끔한 ‘부산곰탕’집에 도착한다. 매일 양지머리와 양, 사골을 챙기며 곰탕 만드는 법을 배워나가고,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부산 야경을 내려다보며 새로운 삶을 산다. 그러나 우환에게는 이곳이 현재가 아니다. 돌아갈 현재가 있다. 다시 어두운 바다 앞에 선 우환은 쉽사리 선택하지 못한다. 이 소설은 40여 년을 거스르는 시간 앞에서 망설이는 우환의 모습을 통해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의 근원적 불안을 조명한다.

우환 외에 이 소설에서는 ‘다른 곳’에서 온 이방인들도 등장한다. 그중 가장 먼저 미래에 도착한 박종대는 살던 곳을 유토피아로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결국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빌려야 할 것이 많았다. 저마다 꿈꾸는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사람들은 타인을 죽이고, 건물을 무너뜨린다. 《곰탕》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들의 간절함이 빚은 잔혹극이자 작가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두드러지는 부조리극이기도 하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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