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52·가명)씨의 ‘디에이치자이 개포’ 당첨 스토리는 극적이다. 그는 로또로 불리는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에 당첨됐다. 김씨는 청약 당일 점심때까지만 해도 재테크에 관심이 없었다. 당연히 ‘디에이치자이 개포’가 뭔지도 몰랐다.
점심시간 무렵 아파트 청약을 준비하던 후배가 지나가는 말로 “선배도 한번 청약해보죠”라고 했다. 그가 무주택자란 걸 알고 있던 후배였다. 김씨의 첫마디는 “그게 뭔데? ”였다. “당첨 되면 노후 보장돼요”란 답이 돌아왔다. “그래. 그럼 한번 넣어볼까.” 그렇게 그는 이 아파트에 당첨됐다.
김씨의 청약 가점는 총 68점. 당첨 커트라인을 겨우 넘었다. 부인과 아들 한명, 부모님을 포함해 부양 가족 수는 4명(25점), 무주택 기간은 12년(26점), 청약통장 가입연수는 18년(17점)이다.
그는 평소 내집마련이나 재테크에 별 관심이 없었다. ‘순간의 선택’ 덕에 의도치 않게 재테크 성공 모델이 됐다. 분양가가 주변 시세 보다 5억원 정도 낮아 주변 지인들로부터 “한턱 쏘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12년 동안 집을 사지 않은 이유에 대해 김씨는 “시기를 놓치면서 그냥 버텼다”고 했다. 그는 서울 구로구의 오류초를 나온 오류동 토박이다. 2002년 오류동 한신아파트 조합원 물량을 웃돈을 주고 2억5000만원에 샀다가 4년 뒤 4억원에 팔고 나왔다. 이후에도 부모님이 계시는 그 동네에서 전셋집을 전전했다.
그는 2011년 중국에 주재원으로 나갔다가 2014년 한국에 돌아왔다. 이번엔 아들 교육 문제로 목동으로 이사했지만 집을 살 엄두를 내진 못했다. “목동 아파트가 낡은데다 너무 비싸서 굳이 살 생각은 안했다”고 했다. 그는 신정동 목동2차우성아파트에 전세로 살면서 아들을 근처 중·고등학교에 보냈다.
당첨됐다고 마냥 기쁜 것만은 아니다. 그는 “중도금 마련에 가랑이가 찢어지게 생겼다”고 했다. 총분양가는 14억2800만원이다. 계약금과 중도금 6회분까지 분양가 70%에 해당하는 9억9960만원의 목돈을 마련해야 한다. 그는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보증금 6억원)에서 월셋집으로 옮기고, 퇴직금을 중간 정산할 계획이다. 주식, 펀드, 적금을 깨는 것은 물론 친척들에게 돈도 빌리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김씨는 준공후 새집에 살 생각은 없다. 그는 “잔금 치를 돈이 없어서 일단 전세로 돌려야 한다”며 “입주할 때(2021년7월) 쯤이면 아들도 고등학교를 졸업해 강남으로 이사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최대한 받아 양도세를 줄인 뒤 적당한 시기에 집을 팔 계획이다. 매매가 9억원을 넘는 집은 1가구1주택 비과세혜택을 받을 수 없어서다. 그는 “노후엔 용인 등 공기 좋은데 가서 50평대 아파트를 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남 분양시장이 로또가 됐다는 지적에 대해 “청약제도가 일종의 특혜라고 생각한다”며 수긍했다. 또 “전매제한 규제만 없었으면 분양권을 당장 팔았을 것”이라고 했다.
강남 로또분양의 해법과 관련해서는 “토지공개념에 입각해 재건축 개발이익을 정부가 세금으로 회수하는 게 맞다”며 “의식주 문제는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양가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반대한다”며 “초과이익은 정부가 세금으로 회수하는 게 맞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강남 분양권이 부자들만을 위한 잔치라는 비판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당첨자 중에선 자신처럼 부자가 아닌 이들도 있는 까닭이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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