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엔 뉴욕 브루클린미술관서 전시
[ 김경갑 기자 ] ‘한지 미술의 거장’ 전광영 화백(74)은 1969년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무작정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아들이 판검사가 되기를 원했던 부친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그는 미술로 승부를 걸고 싶었다. 필라델피아대 대학원에 다니며 염색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삶을 포기할까 했을 정도로 절박한 시간들이었다. 미술 인생 반세기를 맞은 그는 요즘도 그때 일이 눈에 선하다.
4일 서울 팔판동 PKM 갤러리에서 시작한 전 화백의 개인전은 칠순이 지난 나이에도 미국 유럽 아시아를 누비며 일군 열정의 산물이다. 마라톤 같은 미술 인생 여정에서 마지막 목표 지점을 향해 달려온 그의 예술정신이 전시장을 꽉 채웠다. 선조들의 필체가 담긴 고서(古書)와 신문지를 잘라 스티로폼 소재를 싸고 묶어서 쌓아 만든 근작과 고급 날염 기법으로 풀어낸 1970~1980년대 추상 작업 등이 묘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추상과 한지 조형 작업을 넘나드는 전 화백은 “요즘에서야 그림을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동안 300여 차례 비행기에 몸을 싣고 약 400만㎞를 달렸다. 지구 100바퀴를 도는 거리다. 미국 코네티컷주 얼드리치현대미술관과 와이오밍대 부설 미술관을 비롯해 일본 모리아트센터, 캐나다 몬트리올의 란다우 갤러리, 싱가포르 타일러센터, 러시아 모스크바 비엔날레, 벨기에 리데미술관에 잇달아 초청받아 끊임없이 세계무대를 뛰며 ‘미술 한류’를 개척했다. 그는 그동안 뉴욕의 메이저 화랑 해스티드 클라우슬러 갤러리를 비롯해 런던 버나드제이콥슨 갤러리, 캐나다 란다우 파인아트, 독일 벡엔에글링 갤러리, 홍콩 펄램 갤러리 등 세계적인 화랑들과 전속 계약을 맺어 월드스타로 등극했다.
대학 시절부터 ‘꿈을 꾼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절대적으로 신봉해 온 그는 조상들의 기억, 자취를 무던히 좇아 왔다. 사람들이 고유 한지로 만든 고서화를 휴지통에 버릴 때 그는 “책과 그림은 인간이 희망을 찾는 것, 그 속에서 반짝이는 지식과 예술을 건진다”고 반문했다. 과거 누군가의 삶의 흔적과 영혼이 지문처럼 남겨져 있는 책과 그림, 신문지 등이 구체적인 매체가 된 까닭이다. 여기에 보자기 문화도 보탰다. 그가 수십 년간 자신의 작품 제목으로 일관하고 있는 ‘집합’은 정신의 풍요를 갈구하며 인간답게 모여 사는 사람들의 시대 풍경을 은유한다.
다음 목표가 궁금했다. 그는 “우리 미술이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은 광활하다”며 “세계 미술시장에서 100만달러 작가 대열에 끼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 화백은 오는 9월께 뉴욕 브루클린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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