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市場이 政治보다 현명한 이유

입력 2018-04-05 17:27  

타인의 선호 등 '암묵적 지식' 소통 가능케 하는
시장의 價格은 정치 세계엔 없는 소통 체계
경제적 자유 외면해 이를 파괴하면 번영 못해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 자유주의경제철학아카데미 원장 >



좌파 정부는 소비·생산·투자 등을 선택할 경제적 자유보다 정치 참여를 의미하는 정치적 자유를 중시한다. 정부의 개헌안과 역사교과서에서 경제적 자유를 빼려는 것도 민주정치가 자유시장보다 현명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고용·성장·빈곤 등의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도 그래서다. 주목할 것은 그런 전제가 옳은가의 문제다.

이 문제를 따지기 전에 우선 ‘공공선택’을 지배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인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르면 유권자가 올바른 후보자나 정당을 선택하기 위해 잡지·신문 구독, TV토론 시청 등에 투입한 금전적·시간적 비용에 비해 선거의 승리에서 얻는 이득은 매우 작기 때문에 시민들이 정치적 의견 형성에 소극적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시장에서 나쁜 정보로 질 나쁜 중고자동차를 비싸게 구매했을 경우에 입는 손실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지식 습득을 위한 소통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 시장이 정치보다 현명하다고 한다.

그런 인식이 전적으로 옳은 것만은 아니다. 투표 가치는 유권자로 하여금 옳은 선택을 유도하는 데 중요하지 않다.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티머 큐란이 주장하듯 정책 이슈를 배울 인센티브는 옳고 확고한 정치적 의견을 가질 경우 타인들로부터 받는 좋은 평판과 자긍심이다. 정치적 무관심과 우유부단은 조롱의 대상이다.

요컨대 시장 못지않게 정치에도 유권자로 하여금 좋은 지식을 습득하게 하는 유인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따라서 시장이 정부보다 현명한 건 그런 유인구조 때문이 아니라 정치에 없는 소통 방식 때문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게 가격구조를 통한 소통이다. 이 소통 방식은 비언어적이다. 비언어적 소통이 정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시장 사람들을 현명하게 만든다.

비언어적 소통 수단은 시장에만 있을 뿐이다. 정치는 언어적 소통에만 의존한다. 물론 시장에서도 백화점 판매원과 언어를 통해 가격 및 거래 조건을 설득하는 등 언어적 소통이 있다. 그러나 언어적 소통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명시적 지식에 국한될 뿐이다. 주목할 것은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암묵적 지식이다. 이런 지식의 소통까지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가격을 통한 비언어적 소통이다.

상품을 서로 대체할 수는 있지만 그 이유를 말로 표현할 수 없듯이 암묵적 지식은 언어로 전달할 수 없지만 행동으로는 표현할 수 있다. 재주, 아이디어, 특정한 재화에 대한 호불호, 기업가정신 등에 내재된 지식은 대부분 암묵적이다. 문명화된 사회로 우리를 이끈 것은 통계지식, 과학지식 등 명시적 지식이라기보다는 암묵적 지식이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암묵적 지식은 경제인들의 구매, 판매행위를 거쳐 가격구조에 반영된다. 따라서 가격에 사람들이 적응한다는 것은 가격에 구현된 타인들의 의견·선호·생각 등과 소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인이 떼를 지어 시장 바닥을 돌아다닌다고 해서 상인들의 암묵적 지식과 소통할 수는 없다. 그런 소통은 시장의 가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가격구조 때문에 우리의 눈과 귀로는 물론 인지 능력으로 전혀 볼 수도, 들을 수도, 알 수도 없는 범세계적인 거시 우주로까지 소통의 확대도 가능하게 됐다. 우리는 오렌지 가격을 통해 칠레의 오렌지 생산자와 대화한다. 언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정치 소통은 기껏해야 수천 명의 미시 세계에서나 가능하다.

가격 구조는 수백만, 수천만 명이 제각각 가지고 있는 선호·의견·지식 등을 전혀 모순 없이 총합하고 보편적·추상적 지식으로 전환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정치에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존재할 수 없다. 가격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가 없는 곳에만 가격이 존재할 수 있다.

어떤 정신도 흉내 낼 수 없는 가격구조를 통한 웅대한 소통체계 덕분에 시장경제는 고용·빈곤·저성장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다. 시장을 ‘자생적 질서’라고 부르는 이유다. 중요한 건 시장 통제를 불러오는 정치적 자유가 아니라 경제적 자유다. 국가가 통화팽창, 재분배, 규제 등을 통해 경제적 자유를 억압하면 그런 소통체계는 파괴된다. 그 결과는 빈곤과 노예의 길뿐이다.

kwu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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