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더 많이 확보하려고 건물청소·관리 자청하기도
슈퍼 주인엔 "단골 맺자" 제의
"리어카 한 번에 김밥 먹었는데
이젠 두 번 채워야 가능" 한숨
[ 조아란 기자 ] “소형 리어카 한 대 분량(약 16㎏)을 고물상에 넘겨도 700~800원밖에 못 받아.” 서울 혜화동에서 폐지를 줍는 장태엽 씨(75)는 수입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중국의 폐기물 수입 거부가 폐지 대란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면서 폐지 수집으로 생계를 잇는 노인들이 생활고에 내몰리고 있다. 폐기물 수출길이 막혀 고물상들이 폐지 수집인에게 쳐주는 ㎏당 폐지 가격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폐지 한 장이라도 더 주우려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청소를 공짜로 해줄 테니 대신 여기서 나오는 폐지를 다 가져가면 안 되느냐”고 통사정하는 노인까지 생겨나고 있다.
5일 고물상업계에 따르면 현장에서 폐지 수집인들이 고물상에 폐지를 넘기는 가격은 ㎏당 40~50원으로 석 달 전인 지난 1월(90~100원)에 비해 반토막 났다. 중국 업체들이 폐지 수입을 중단하면서 폐골판지, 폐신문지 등 폐지의 최종 유통가격이 작년 말 ㎏당 154원에서 지난달 말 110원으로 급락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고물상과 중간 가공업체가 마진(㎏당 50~60원)을 떼간다. 노인들이 줍는 폐지는 고물상과 폐기물 선별장, 압축장 등 중간 가공업체를 거쳐 국내 제지업체나 중국 수입업체 등으로 팔려나간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가장 힘없는 폐지 수집 노인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장씨는 “학기가 끝나는 겨울부터 이사가 많은 봄까지가 ‘최성수기’인데 작년 3월 30만원은 거뜬했던 게 지난달에는 23만원이 고작이었다”고 했다. 또 다른 폐지수집인 이순미 씨(69)도 “예전엔 1200원짜리 김밥 한 줄을 먹으려면 리어카를 한 번만 채우면 됐는데 이제는 두 번을 채워야 한다”며 “김밥도 올초부터 1500원으로 올라 이제 정말 굶어 죽는 게 아닌지 두렵다”고 걱정했다.
폐지를 한 장이라도 더 주우려고 폐지 수집인끼리 경쟁이 붙기도 한다. 건물 청소나 쓰레기장 관리를 ‘서비스’하겠다는 노인도 생겨나고 있다. 그 대가로 폐지를 독점적으로 공급받는 일종의 ‘단골 계약’을 맺으려는 것.
대학로의 한 슈퍼마켓 주인은 “주기적으로 내다 버리는 과자·음료박스 등을 보고 ‘단골 맺어주면 안 되냐’는 노인이 올 들어 부쩍 늘었다”며 “지난달에만 다섯 명이 찾아와 물어봤는데 우리 가게는 이미 단골이 있어 다 돌려보냈다”고 전했다. 폐지 수집인 하모씨(79)는 “학원을 단골로 두면 양질의 폐지가 많이 나와 그나마 먹고살 만한데 그런 것도 폐지 수집인 중 젊은 축에 속하는 60대들이나 잘한다”며 “우리 같은 70~80대는 취직할 곳도 없어서 일을 그만두면 생계가 막힌다”고 토로했다. 2016년 전국고물상연합회에 따르면 폐지 수거 노인을 포함한 고물업계 종사자는 170만여 명에 달한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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