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내년 '슈퍼 팽창 예산' 적절한가

입력 2018-04-06 17:35  

[ 김일규/고경봉 기자 ] 정부는 작년에 세운 ‘2017~2021년 국가재정운영계획’에서 내년 예산(총지출) 증가율을 5.7%로 잡았다. 그러나 지난달 내놓은 ‘2019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지침’에서 내년 총지출 증가율을 ‘5.7% 이상’으로 하기로 수정했다. 내년 경상성장률 4.8%(국회예산정책처 전망)를 훌쩍 넘는 ‘슈퍼예산’이다.

올해 예산(428조8000억원)을 고려하면 내년 예산은 최소 453조3000억원 이상이 된다. 저출산·고령화 등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계획보다 돈을 더 풀기로 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정부는 내년에 △청년 일자리 △저출산·고령화 △혁신성장 △안전 등 4대 분야에 중점 투자하기로 했다. 청년 일자리와 관련해선 취업·창업·교육·주거 등을 패키지로 지원할 계획이다. 저출산 추세 전환을 위해 효과가 높은 사업은 더 지원하고, 고령화에 대비해 노인 일자리는 확대하기로 했다.

연구개발(R&D), 산업, 인력, 생태계 조성 등 혁신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한편 드론(무인항공기)·자율주행차 등을 집중 지원해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철저한 안전 점검과 위험시설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안전인증제 도입 등의 계획도 내놨다.

정부의 슈퍼예산에 대해 찬성 측은 “그나마 재정에 여력이 있는 지금이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우리 정부에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주문하는 것도 찬성의 이유다.

그러나 국가재정운영계획을 무시한 슈퍼예산은 위험하다는 반론도 있다. 재정 운용에 관한 예측성이 떨어져 정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또 저출산·고령화는 재정으로 단기 성과를 내기보다 중장기 대처가 필요한 사안이란 지적을 내놓고 있다.

[찬성]
저출산 고령화·사회안전망 확충
재정여력 있을 때 선제 대응해야

OECD·IMF도 적극적인 재정정책 권유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국제 경제기구의 정책 권고에 매우 협력적이다. 이들의 정책 권고가 객관적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소위 ‘눈치주기 압력(peer pressure)’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에는 국제 협력의 필요성을 잘 알기 때문에 협력 관계를 더욱 중시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국제기구의 거듭된 정책 권고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이지 않은 사안이 있다. 바로 재정정책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OECD와 IMF는 한국 국가보고서에서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권유해왔다.

그러나 한국은 2000년대 들어 2009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재정흑자를 시현했다. 최근 몇 년간은 국내총생산(GDP)의 1.5% 내외의 흑자를 보였다. 적극적 재정정책이란 일반적으로 정부가 거둔 것보다 더 많이 쓰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한국 정부의 예산 증가폭은 연 5%대 수준이었다. 재정수지 흑자가 발생한 것은 예상보다 높아진 경제성장으로 세수가 예산 증가폭을 웃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재정수지 흑자가 GDP의 1.5%를 넘는 것은 OECD 국가 중에서도 매우 드문 경우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우리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수행하지 않았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건실한 재정이 한국의 신용등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는데도 국제기구는 왜 우리에게 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권유하고 있을까. 첫째 이유는 건전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한국은 급격한 인구 감소로 2020년 이후에는 경제성장률이 둔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인구와 성장률이 하락하면 재정 수입이 감소하고 지금의 재정수지 흑자도 적자로 전환될 것이다. 둘째는 고령인구 증가에 따른 재정 지출 수요의 증가다. 지금까지 우리 경제의 성장을 주도해온 가장 큰 인구그룹은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세대다. 이들이 모두 65세를 넘겨 피부양 세대가 되는 2020년부터는 재정적자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셋째는 노인 빈곤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 때문이다. 한국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노인 빈곤율이 세계 최고다. 노인 자살률도 가장 높다. 사회적 안전망을 조속히 확충해 이들을 보호하고 소비 여력을 키워 줘야 국내 소비 기반을 확대하고 사회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지난 2월에도 IMF는 한국의 재정수지 흑자 비중을 GDP의 1.5%에서 0.5%로 축소하고 조속히 성장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부가 중기재정계획의 기준을 넘어서는 소위 ‘슈퍼예산’ 도입을 예고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머지않아 다가올 성장률 저하와 재정 악화를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산 확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재정 지출의 우선순위를 성장 기반을 확대하는 부문에 둬야 한다. 가장 시급한 정책과제는 여성 인력의 경제활동 참여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보육시설 등 인프라를 대폭 확충해 여성들이 육아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52%대에 머물고 있는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을 유럽 복지국가들과 같은 60%대로만 올려도 인구 감소 영향을 상쇄할 수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아직 재정 여력이 있을 때 빨리 움직여야 한다.

[반대]
복지 지출 급증 등으로 재정 압박
'정무적 판단' 따른 사업 자제해야

재정운용 예측성 떨어지고 신뢰성 흔들려

작년에 한국의 국가부채가 1500조원을 돌파했다. 국가부채에서 공무원연금 등 연금충당부채를 공제한 국가채무도 650조원을 넘어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38.6%에 달하는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내년 예상 경제성장률의 두 배가 넘는 총지출 증가를 계획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복지 지출은 해마다 빠른 속도로 증가해 다른 부문의 재정 운용에 압박 요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2022년까지 공무원 17만4000명을 신규 채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런 확장적 예산 편성으로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향후 5년에 걸친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대한 신뢰성 저하다. ‘2017~202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상 당초 올해 총지출 증가율은 5.8%인데, 예산안 편성 시 7.1%라는 큰 폭으로 상향 조정됐다.

국가재정운용계획은 매년 10개 이상 분야에서, 분야당 10명 안팎의 전문가가 몇 달씩 노력해 만든 결과물이다. 이에 대한 신뢰가 없어지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 재정 운용의 예측 가능성도 크게 저하될 것이다. 복지 지출은 하방경직성과 비가역성이 있어 일단 발을 담그면 헤어나기 힘든 수렁과 같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거나 기존 제도를 개편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한다.

언제부터인지 정부 사업을 정하고, 예산 규모를 결정할 때 ‘경제적 논리’에 우선해 ‘정무적 판단’이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사업이 잘못돼 책임 소재를 규명할 때 ‘경제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기 어려워 시간이 지나면 비슷한 과오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예산당국이 부처 사업 담당자들과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결과를 도출한다면 적폐 대상 사업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대비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어제오늘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동안 이미 막대한 예산이 지출됐지만 단기에 가시적 성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 제도나 사업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관리, 폐비닐 등 폐기물 관리도 중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분야다. 짧은 기간 내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는 힘들지만 현재 세대와 후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투자다. 이런 투자를 위해서도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이행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와 노력이 필요하다.


예산의 급속한 팽창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당장 수행해야 할 사업과 뒤로 미룰 사업, 그리고 아예 하지 않을 사업을 선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예비타당성조사가 어느 정도 이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아직 개선해야 할 사항이 많다. 큰 틀에서 거버넌스 문제를 손보고, 사업 유형별 조사기법도 시대 변화에 맞춰 수정·보완해야 한다.

정부 예산만으로 국민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사업 간 우선순위를 정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작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탈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 등이 개발한 넛지(nudge)를 재정 운용에 활용하면 예산 지출 없이도 정부가 기대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영국 정부는 ‘행동이해팀’이라는 조직을 가지고 있고, 미국은 ‘백악관 사회 및 행동과학팀’을 운영해 적은 비용으로 즉각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점증주의적 예산 편성의 타성에서 벗어나는 발상의 전환이 예산 증가보다 더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김일규/고경봉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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