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서울 경전철시대 7개월, 집값은 왜 제자리?

입력 2018-04-08 07:30  

'무늬만 역세권'…집값은 박스권
수요예측 뻥튀기…세금 먹는 하마





지난해 9월 서울 강북구 수유동 일대에 우이신설 경전철이 개통했다. 우이신설선은 강북구 우이동과 동대문구 신설동 사이 11.4㎞를 잇는 서울 최초 경전철이다. 지하철역이 드문 수유동 일대는 경전철 개통에 따른 최대 수혜지로 꼽혔다.

그러나 개통한 지 7개월이 지났음에도 주변 집값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아파트·다세대주택은 말할 것도 없고 인근 상권에도 별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는 게 인근 중개업소 설명이다. 수유동 G공인 관계자는 “마을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게 더 편리하다보니 경전철 수혜를 입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며 “상권이 발달한 북한산 입구에도 북한산우이역이 들어섰지만 유동인구가 크게 늘어나진 않았다”고 전했다.

서울?수도권에서 경전철 ‘프리미엄’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경전철 주변 아파트값은 개통 전과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하루 평균 이용객이 예상수요의 절반에도 못 미치며 외면받는 탓이다. 신분당선·9호선 연장선 등 새로 개통한 지하철이 주변 집값을 끌어올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경전철은 정치 논리에 휘둘려 수요예측에 실패한 사업”이라며 “노선 선정부터 타당한지 다시 검증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역이 코앞인데 5년째 ‘박스권’

우이신설선의 경우 아파트 밀집지역에도 호재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바로 앞에 우이신설선 솔샘역이 들어선 미아동 일대 아파트촌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 ‘SK북한산시티’ 전용 59㎡의 지난달 실거래가는 2억7000만~3억7500만원이다. 지난해 1월(3억1200만~3억4900만원)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 건너편 ‘벽산라이브파크(전용 59㎡)’도 1년째 2억8000만~3억2000만원 사이에 머물고 있다. 인근 E공인 관계자는 “개통 전 주민들 사이에서 기대감은 있었으나 경전철이 생겼다는 이유로 매수를 결심한 사람은 드물다”고 전했다. A공인 관계자는 “일부 호가가 오른 단지가 있지만 전반적인 부동산시장 호황 분위기와 갭투자 수요 때문”이라며 “경전철은 호재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경전철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6일 오후 1시에 찾은 의정부경전철 회룡역 승강장은 이른 새벽처럼 한산했다. 열차 도착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리지만 대기 인원은 단 2명에 불과했다. 도착한 열차 안에는 4명이 앉아 있었다. 회룡역에서 새말역까지 일곱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타고 내린 인원은 1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경기 의정부시 민락동에 사는 최모씨(35)는 “환승이 잦은 데다 이동 시간이 오래 걸려 버스를 주로 탄다”며 “경전철 주변 아파트는 무늬만 역세권”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집값은 5년 넘게 박스권 신세다. 의정부경전철 새말역 앞 ‘풍림아이원(전용84㎡’)도 2012년 개통 이후 줄곧 2억원 후반선에 거래되고 있다.

용인 경전철 주변 집값도 마찬가지다. 용인경전철 김량장역 앞 ‘김량장어울림’ 전용 58㎡는 지난달 2억2900만원에 손바뀜했다. 2013년 개통 당시 거래가격(2억2800만원)과 비교하면 5년째 그대로다. 김량장동 인근 N공인 관계자는 “경전철을 타는 사람이 없는데 집값에 호재로 작용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버스 있는데 굳이 경전철 이용할 필요가…

경전철이 외면받는 것은 기존 교통수단인 버스보다 불편하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날 용인경전철 동백역에서 2호선 강남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봤다. 분당선 기흥역과 신분당선 정자역에서 총 두 번 환승해야 했다. 갈아 탈 때 걸어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소요 시간은 1시간을 넘겼다. 지도 앱을 살펴보니 강남역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5003A·B번)가 동백역 앞 버스정거장을 지나고 있었다. 이동 시간은 1시간 대로 비슷했다. 굳이 좁고 환승까지 해야하는 경전철을 이용할 이유가 없었다.


의정부 경전철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동오역 인근 아파트에 사는 조모씨(28)는 경전철을 타지 않은 지 2년이 넘었다. 버스가 훨씬 편하고 빨라서다. 직장인 조씨는 아침마다 집 앞에서 3200번 버스를 타고 7호선 수락산역에 내린다. 여기까지 15분 정도 걸린다. 반면 경전철을 이용하면 회룡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한 뒤 7호선 도봉산역에서 또 한 번 갈아타야 한다. 시간은 30분으로 두 배 늘어난다. 조씨는 “경전철은 의정부 시청을 돌아가 속도가 느리고 내부도 좁아 답답하다”며 “인근 의정부역뿐 아니라 서울 도심을 갈 때도 버스를 먼저 탄다”고 말했다.

우이신설선도 예외가 아니다. 이 노선이 지나는 곳은 가파른 언덕지형이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언덕길을 한참 걸어가는 것보다 마을버스를 타고 단지 입구까지 가는 게 더 편하다. 인근 L공인 관계자는 “마을버스가 일부 아파트 단지 후문까지 간다”며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전철역에서부터 걸어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두 배 뻥튀기… 엇나간 수요 예측

경전철 이용객수를 봐도 역세권 프리미엄이 형성되지 않는 이유를 짐직할 수있다. 세 경전철의 하루 평균 이용객이 예상 수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용인시청에 따르면 용인경전철 일평균 이용객은 2만3000명(지난 2월 기준)으로 개통 전 예상한 16만명의 14%에 그쳤다. 우이신설선은 하루 13만명이 탈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난 2월 기준 7만명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무임승차 비율이 40%에 육박해 운영에 비상이 걸렸다.

의정부경전철은 승객이 적어 지난해 5월 3600억원 적자를 떠안고 파산했다. 오는 10일까지 운영을 맡을 새 민간사업시행자를 모집하고 있으나 수익성이 낮은 탓에 새 주인을 찾기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다. 현재는 인천교통공사가 지난해 10월부터 위탁 운영을 맡고 있다.

대부분 경전철은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용인시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1068억원을 용인 경전철 적자를 메우는 데 쏟아 부었다. 2011년 개통한 부산·김해경전철도 실제 이용객(3만~5만명)이 예측(17만6000명)에 못 미치면서 매년 420억원 적자를 지자체가 보전해주고 있다.

◆“정치 논리에 휘둘려 화 자초”

일반적인 철도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친다.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관리센터가 사업의 경제성·정책성 등을 검토한다. 경제성 분석(B/C)이 1.0을 넘어야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타당성 조사 과정에서 정치 논리가 작용하는게 현실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김민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선 선정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다보니 수요가 과다하게 예측됐다”며 “10~20년 뒤 인구 구조, 경제 상황 등을 복합적으로 예측해 타당성 검토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적자 보전에 세금이 투입되고 있는 대부분 철도, 도로 등은 해당 지역구 정치인의 선거공약이었다.

경제성 분석(B/C)뿐 아니라 재무적 수익성도 자세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재무적 수익성은 쉽게 말해 철도 운영에서 오는 수익성이다. 수입/비용비(R/C)를 계산해 평가한다. 서울시가 2015년 마련한 ‘제1차 서울시 10개년 도시철도망구축계획’에 따르면 새로 지을 9개 경전철 노선 모두 수입/비용비(R/C)가 0.55~0.76 수준에 그쳤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정치 공약이라는 이유로 철도 운영보다는 착공 자체에 관심을 두는 점이 문제”라며 “적자가 났을 때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철도 운영비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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