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카리브해의 쪽빛 파도 타고 콜럼버스가 첫발 내디뎠던 그곳

입력 2018-04-08 16:41   수정 2018-04-13 17:12

낭만이 넘치는 쿠바여행 (1) 바라코아

쿠바의 첫 수도였던 동쪽 오지마을
해안 산악도로 전망대… 풍광 한눈에
곳곳에 체 게바라 등 혁명의 흔적




아름다운 것은 모두 먼 곳에 있다. 먼 별, 먼 나라, 언제나 멀리 있는 그대. 쿠바의 끝에 있는 바라코아는 아바나를 떠나 870여㎞ 떨어진 산티아고 데 쿠바까지 4박을 하고 경유하고도 5시간 이상을 더 가야 하는 먼 곳이다. 바라코아로 가는 길에는 평지, 고갯길, 해변이 펼쳐진다. 관타나모를 지나 만난 카리브해의 파도는 결코 잔잔한 낭만의 바다가 아니었다. 그 먼 곳에서 수만 년은 부딪쳤을 바위에 코발트빛 바다는 푸르름을 연신 사납게 토해내고 있다.

쿠바에서 가장 외진 동네 바라코아

콜럼버스가 첫 항해에 도착한 보물섬 쿠바의 동쪽 끝단의 도시 바라코아로 가는 길은 세 가지가 있다. 콜럼버스가 처음 왔던 바닷길, 아바나나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날아가는 하늘길 그리고 육로이다.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관타나모를 경유해 카리브해의 푸르른 열두 색깔 바다 물빛을 감상하며 해변을 따라가는 길이 일반적이다. 바다가 끝나는 곳에는 산맥의 준령을 굽이굽이 넘어가는 아찔한 고갯길이 있다. 이 산악지대는 과거 혁명시대 혁명군들이 암약하던 곳이다.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가 입간판으로 서서 고개를 지키고 있다. 지금은 도로가 뚫렸지만 아직까지도 쿠바에서 가장 외진 곳이다. 쿠바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가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쿠바의 시골길은 인적과 차량 통행이 드물어서 도로정체가 없다. 고개를 넘어가기 전까지 바라코아 가는 길은 해변과 평야지대의 한적하면서 반듯한 길이다. 반듯하며 한적한 길은 한국에서 보기 드물다. 차창으로 스치는 풍경에는 남루함과 원색의 바다와 산맥의 푸른 능선이 넘쳐난다. 차를 얻어 타기 위해 애처롭게 쿠바 화폐 모네다를 흔드는 사람이 도처에 있다. 하지만 잠시 더 먼 곳으로 시선을 던지면 푸른 하늘과 쪽빛 바다가 무시로 등장하는 파라다이스가 펼쳐진다.

쿠바의 여행객은 동쪽 끝으로는 잘 가지 않는다. 대부분 일정이 트리니다드나 바라데로가 마지막이다. 바라코아는 여행객으로 아직 물이 덜 든 순박한 동네이다. 사람들의 눈빛도 선량하고 여행객이 당하는 바가지 같은 구질구질한 일도 드물다.

바라코아는 지형적으로는 벌꿀만(Bay of Honey)이란 뜻의 바이아 데 미엘이란 커다란 만을 품고 있으며 쿠치요스 델 토아 산맥의 습하고 바람이 부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1960년대 산에 도로가 건설되기 전에는 이른바 ‘육지 속의 섬’이었다.

콜럼버스가 처음 도착한 쿠바 땅

바라코아는 1492년 10월28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첫 항해에서 쿠바에 상륙한 땅이다. 바라코아라는 이름은 원주민 아라와크족의 ‘바다가 있다’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콜럼버스가 쿠바에 상륙한 그 땅을 산살바도르라고 이름 붙였다. 콜럼버스는 《항해록》에 “지금까지 본 곳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다. 훌륭한 항구와 수심이 깊은 강들이 많이 있다”라고 썼다. 콜럼버스는 크루스 데라 파라로 불리는 목재 십자가를 나중에 바라코아만이라 불리는 모래사장에 세웠다. 이 십자가는 콜럼버스가 남긴 가장 오래된 기념물이 된다. 원본으로 추정되는 십자가는 대성당에 있다. 스페인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탄소 연대 측정에 따르면 그 시대의 것이지만 목재의 종류는 바라코아산이기 때문에 바라코아에서 제작해서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라코아는 한때 수도였기 때문에 방파제 부근에는 방어용 요새가 세 개나 있다. 콜럼버스는 바라코아가 산세가 빼어나고 높이가 시실리(Sicily)와 닮았다고 표현했다. 쿠바 혁명 이전에는 뱃길이 유일한 교통로였다. 혁명의 성과 중 하나로 알려진 120㎞의 도로가 1960년대에 산을 통과하며 건설된다. 도로에서 가장 높은 곳은 지상 600m에 있고 11개의 다리가 있다. 도로의 가장 높은 곳에 전망대가 있다.

바라코아는 쿠바 역사의 시작점이자 혁명을 일으킨 역동적인 도시였다. 동쪽 끝에 외롭게 자리한 이곳에서 혁명이 일어난 것은 사실은 소외와 외로움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이 지역에서 활약하던 원주민의 영웅 아투에이가 그렇고 쿠바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가 그렇고 앙골라의 혁명에 참전한 바라코아인들이 그렇다.

바라코아로 넘어가는 산봉우리는 고개마다 바나나를 파는 행상들이 눈부시게 푸른 산맥을 배경으로 서 있다. 과거에는 혁명군들의 차지였던 산악지대이다. 정상에는 전망대가 설치돼 있는데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조망할 수 있다. 시원한 바람이 계곡 사이에서 불어오고 꼬불꼬불한 2차선 도로에서는 올드카들이 한산한 도로를 힘겹게 오르고 있다.

바라코아로 들어가는 길가에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걷는 사람, 앉아서 노닥거리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한적한 시골이다. 산촌과 어촌의 경계에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어쩌면 과거의 역사 속 어느 도시에 들어가는 듯한 조촐한 풍경이었다. 4시간 넘게 해안과 산을 따라 넘어간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에게서 산 너머 사람들과는 다른 오지의 순박함이나 강인함이 느껴졌다.

일 년 내내 여름만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보인다. 겨울이라지만 정오에 다가가면 햇살이 따사롭다. 바라코아의 시내에 들어서자 해안가 콜럼버스의 주황색 동상이 보인다. 해안선의 방파제를 따라 거친 대서양의 파도들이 넘실대고 있다. 해안에서 멀어지면서 주택가로 진입하자 골목들이 올망졸망 이어진다. 건물은 오래되었으나 수도 아바나보다는 깔끔한 거리가 나온다. 중심부에는 중앙공원도 있고 어김없이 쿠바의 독립영웅이자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쿠바 노래 ‘관타라메라’를 작사한 시인인 호세 마르티의 동상도 있다.


원주민 아투에이의 기개가 깃든 바라코아

쿠바에는 원래 타이노족이라는 부족이 있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서 거의 멸족됐지만 바라코아에는 그 후손이 지금도 살고 있다. 바라코아의 원주민 영웅은 아투에이다. 지금의 아이티인 이스파뇰라(작은 스페인이란 뜻) 섬의 스페인인으로부터 탈출해 쿠바에서 타이노족을 이끌었다. 하지만 동료의 배신으로 화형에 처해진다. 처형당하려는 순간 아투에이에게 가톨릭의 신부는 개종하면 구원의 길도 있다며 설득을 시도했다. 아투에이는 신부에게 스페인인도 죽으면 천국에 가느냐고 물었고 신부는 그렇다고 했다. 아투에이는 신부에게 “그렇다면 차라리 지옥에 가는 편이 낫다”고 답하고 죽음을 택했다. 아투에이는 향후 남미에서 독립과 혁명의 아이콘이 된다.

바라코아는 쿠바 관타나모주의 도시이다. 초대 쿠바 총독 디에고 벨라스케스 쿠에아르에 의해서 1511년에 건설됐다. 쿠바에서 가장 오래된 스페인인 거주지역이다. 쿠바의 첫 수도였기 때문에 ‘첫 동네(Ciudad Primada)’라고도 불린다. 그 지리적 특성 때문에 16세기 중반에는 반란군의 유배지가 됐다.

16~17세기에 걸쳐 다른 곳에서 고립됐던 바라코아는 프랑스, 잉글랜드의 밀수 천국이 됐다. 19세기 초에는 아이티의 독립운동을 피해 프랑스인들이 대거 바라코아로 윈드워드 해협을 건너오면서 커피와 카카오 콩 재배를 시작한다. 19세기 중반이 되면 호세 마르티, 안토니오 마세오 같은 혁명가, 독립운동의 투사가 바라코아에 상륙한다. 1902년에 쿠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한다.

여행메모

바라코아는 연간 강수량은 1600㎜, 연평균 기온은 25~28도, 습도는 85%이다. 해발 575m의 테이블 형상의 융케산(El Yunque는 모루라는 뜻)은 바라코아 서쪽 10㎞에 있다. 쿠바를 동서로 횡단하는 1435㎞의 고속도로 이름이 카레테라 센트럴(Carretera Central)이다. 바라코아는 동쪽 끝단에 있다. 만의 서쪽 시내 중심부에서 북북서로 4㎞ 떨어진 곳에 주로 국내선만 다니는 작은 공항인 구스타보 리소 공항이 있다. 쿠바나항공이 아바나를 오가는 국내선 편을 운항하며 편수가 적고 운임이 저렴하다.

주산물로는 바나나, 코코넛, 카카오가 있다. 또 쿠바의 주요 초콜릿 생산 지역이기도 하다. 쿠바섬 동쪽 끝에 있는 격오지이기 때문에 수많은 관광객이 쉽게 다녀가기는 어렵다.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버스로 4시간30분, 아바나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걸린다.

바라코아는 역사적 지형적으로 외래문화가 직속적으로 유입되며 혼종의 문화를 이룬다. 음식도 쿠바식 퓨전으로 유명하다. 쿠바 유일의 코코넛 산지이다. 해안이 있어 생선이 풍부해 코코넛 크림으로 만든 생선 요리가 맛있다.

글: 최치현 여행작가 maodeng@naver.com
사진: 정윤주 여행작가 traveler_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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