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호황…두근두근
1990년대 후반 인터넷 대중화로
광섬유 100弗까지 치솟았지만
닷컴버블 꺼지며 7弗까지 폭락
글로벌 통신 2·3위 업체에 수출
대한광통신 공장 가동률 100%
5G 통신망 구축에 광섬유 수요↑
올 초 12弗 넘어…작년엔 흑자
"물량부족에 대응" 800억 유상증자
[ 고재연 기자 ]
지난해 4월, 미국 최대 통신사 버라이즌과 특수 유리 전문업체 코닝이 대규모 계약을 맺어 눈길을 끌었다. 버라이즌이 코닝으로부터 3년간 10억5000만달러(약 1조원) 규모의 광섬유를 공급받기로 한 것. 광섬유를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로웰 매캐덤 버라이즌 회장은 당시 “제대로 된 5G 통신망을 구축하려면 지금보다 최대 6배 많은 광섬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5G 바람 타고 수요 급증
8일 업계에 따르면 광섬유·광케이블업계가 약 20년 만에 호황기를 맞게 됐다.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이 잇달아 5G 설비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서다. 5세대 이동통신망을 뜻하는 5G는 1GB 영화 한 편을 10초 안에 내려받을 수 있는 속도를 자랑한다.
주요국들은 앞다퉈 5G 상용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의 3대 이동통신사는 오는 6월 개막하는 러시아 월드컵에서 5G를 시범 서비스하는 것을 비롯해 5G 통신망 구축에 180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중국 1위 통신사인 차이나 모바일은 올 상반기 1.2억f.km(파이버킬로미터)의 광섬유를 공급받기로 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보다 80% 증가한 수치다. 1f.km는 광섬유 1심(fiber)의 길이를 뜻한다.
4차 산업혁명을 실현하기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스마트 도시’를 표방하고 나서면서 정보기술(IT) 인프라 투자도 늘어나고 있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중앙 서버와 끊임없이 주고받아야 하는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등 무선 네트워크가 필요한 분야가 많아지면서 도시 설계도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하영 대한광통신 부사장은 “미래 도시는 ‘광섬유의 바다’에 떠 있는 세상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도시 곳곳에 광케이블이 촘촘하게 깔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광섬유 가격도 오르고 있다. 광섬유값은 글로벌 수급 상황에 따라 큰 폭으로 요동쳤다. 1990년대 후반에는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광섬유 가격이 f.km당 100달러까지 치솟았다. 2000년대 닷컴 거품이 꺼지고 공급 과잉이 겹치면서 가격은 7달러까지 폭락했다. 최근 10여 년간 6~7달러 선에 머물던 광섬유 가격은 5G 설비투자에 힘입어 올초 12달러를 넘어섰다.
◆산업·군사·의료용으로 확대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광섬유 모재(母材)부터 광섬유, 광케이블까지 모든 공정의 제품을 생산하는 대한광통신은 시장 변화 덕분에 ‘재기’에 성공했다. 별도 재무제표 기준으로 2016년 매출 1160억원에 영업손실 13억원을 낸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1355억원, 영업이익 161억원을 기록하며 흑자전환했다.
광섬유 모재부터 전 공정의 제품을 제조하는 글로벌 업체는 대한광통신을 포함해 코닝, 스미토모 등 10여 곳에 불과하다. 모재는 지름이 약 200㎜인 석영 유리봉이다. 이 유리봉에서 지름 0.25㎜의 광섬유를 뽑아낸다. 대한광통신과 스미토모는 현존하는 광섬유 코어 모재 생산 기술 중 최상위인 수직증착(VAD) 공법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는 전선 부문과 달리 다른 기업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배경이다.
대한광통신은 구부림강화광섬유, 극저손실 광섬유 등 프리미엄 제품 개발에 주력했다. 그 결과 코닝, 스미토모 등으로부터만 광섬유를 공급받던 글로벌 2위 통신 케이블 제조사 넥상스에 광섬유를 납품하게 됐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3위 기업인 제너럴 케이블에도 광섬유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이동통신사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싱텔 등 글로벌 통신사에도 광케이블을 납품한다. 광섬유를 생산하는 경기 안산공장과 광케이블을 생산하는 충남 예산공장은 100% 가동률을 기록하고 있다.
대한광통신은 시장 수요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8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다. 광섬유 생산 설비를 고도화하고 ‘스마트 팩토리’를 구축해 2020년에는 광섬유 생산량을 지금의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증자로 조달하는 자금 중 약 100억원은 산업·군사·의료용 레이저 등 특수 광섬유 분야에 투자하기로 했다. 영국 레이저 회사 SPI레이저스에서 일하던 김재선 박사를 영입해 특수광섬유를 담당하는 부설 연구소장을 맡겼다. 동성제약과 함께 빛으로 암을 치료하는 광역학 치료(PDT)용 레이저 기기를 개발해 췌장암 환자에게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오치환 대한광통신 대표는 “내년에는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을 25%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안산=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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