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무차입 공매도 물량 쏟아져도 … '경보음' 안울린 증시시스템

입력 2018-04-08 18:03  

부실 '민낯' 드러난 증권거래시스템

시스템 불신으로 번지는 배당 사고 후폭풍

(1) 무차입 공매도 무방비 거래
전산상 '진짜 주식' 인식…호가제한도 안받아

(2) 무한정 발행된 주식
장중 증권사가 주식수 맘대로 늘릴수 있어

(3) 감시 못한 전산시스템
내부통제 부실·역할못한 시스템의 문제 커



[ 나수지 기자 ]
삼성증권의 배당 사고는 담당 직원의 클릭 실수 한 번에 증권 거래 시스템이 통째로 무너져버린 사건이란 지적을 받는다. 배당금을 배당주로 잘못 입력하는 실수만으로 있지도 않은 가상 주식이 무한정 발행되고, 이 ‘유령주식’ 중 일부 물량이 장내에서 제한 없이 매매 체결됐기 때문이다. 적잖은 투자자들로부터 “주식시장이 가상화폐 시장보다 못하다”는 냉소적인 반응마저 나오고 있다.

◆무차입 공매도 어떻게 가능했나

현행 자본시장법에서 주식을 빌리지 않고 파는 무차입 공매도는 외국인은 물론 기관과 개인 모두 불법이다. 주식을 공매도하려면 개인은 증권사로부터 주식을 빌리고, 기관과 외국인은 한국예탁결제원이나 한국증권금융 등 중개기관을 통해 지분을 가진 기관투자가 등으로부터 주식을 대차해야 한다.


‘유령 주식’을 나눠 받은 직원들이 거래소에서 주식을 팔 수 있었던 건 이 주식이 전산상으로는 진짜 주식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안일찬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주식매매제도팀장은 “삼성증권의 배당사고로 고객계좌부에 대규모 일반 주권이 인식됐다”며 “정식 절차를 밟아 상장된 주식이 아니기 때문에 실질은 공매도지만 형식상으로는 일반 주식처럼 매도 계약이 체결됐다”고 설명했다.

잘못 배당된 주식의 0.18%에 해당하는 500만 주가 시장에 매각되는 과정에서 공매도 주식에 적용되는 호가제한이 작동하지 않고 시장가로 팔린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공매도를 할 때는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에만 주식을 팔 수 있는 ‘업틱룰’이 적용된다. 공매도 주체가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고삐 없는 가상의 주식 발행

형식상 무차입 공매도가 아니어서 거래가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장중에 발행주식 수가 급격히 늘고,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주식이 진짜 주식으로 인식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시장전문가들은 증권사 내부통제 시스템과 전체 주식 거래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났다고 입을 모은다.

개별 증권사가 장중에 주식 수를 맘대로 늘릴 수 있었다는 게 첫 번째 문제로 꼽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유상증자 등 주식 수를 늘리려면 적어도 주권 상장 전날까지 예탁결제원과 해당 업무를 맡은 증권사가 주식 수를 맞춰보고 협의해 상장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업계에선 장중에 주식 수를 증권사가 임의로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고 당연히 믿고 있었는데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너무 쉽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점검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제어 풀린 전산시스템

주식이 실존하는지 확인하지 않고도 매도가 가능했던 점도 제도의 허점으로 거론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매도하려는 주식이 확보돼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절차가 없었다”며 “투자자 계좌관리를 맡은 증권사가 주식 수를 기재하는 고객계좌부를 담당하는 건 맞지만 이를 외부에서 대조해 검토하는 장치가 없어 사고가 커졌다”고 말했다. 일차적으로는 증권사의 책임이 인정되지만 이를 감시하지 못한 시스템의 문제도 크다는 지적이다.

황 연구원은 “해외에서는 금융회사가 이 같은 실수로 투자자에게 해를 입혔을 경우 막대한 과징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금융사 내부통제시스템이 탄탄하다”며 “해외에서도 실시간으로 주식 수를 증권사와 외부가 대조하는 시스템은 아직 없지만, 국내에서 사고가 발생한 만큼 외부 감시 시스템을 먼저 개발하고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무차입 공매도

주식을 빌려서 파는 공매도와 달리 주식을 빌리지 않고 파는 것을 말한다. 한국은 주가 낙폭을 키우고 증시 변동성을 확대한다는 이유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무차입 공매도를 금지했지만 미국은 허용하고 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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