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에 금속 불순물 있는 반투명한 돌 '방해석'
날씨 나빠도 하늘에 대고 보면 태양의 방향·위치 알 수 있어
[ 박근태 기자 ] ‘붉은 털 에릭’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인 에리쿠 프로발드손은 982년 추종자들과 함께 배 25척을 타고 그린란드로 건너가 터를 잡았다. 1015년부터 1028년까지 노르웨이를 지배한 바이킹왕 올라프 2세는 수많은 해상 무용담을 전설로 남겼다.
바이킹들은 이처럼 수세기 동안 대서양을 지배했다. 나침반 없이도 수천 ㎞ 거리의 바다를 건너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에 있는 식민지를 거느렸다. 이들이 짙은 안개와 구름이 자주 낀 날씨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던 비결은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최근 유럽의 광학 연구자와 역사학자들이 그 실마리를 풀고 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외트뵈시로란드대 연구진은 영국 왕립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오픈사이언스에 바이킹들이 불투명 광물인 방해석과 근청석, 전기석 결정을 이용해 장거리 항해 성공률을 높였다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올라프왕의 전설’ 같은 서사시 등에 등장하는 수수께끼 같은 ‘선스톤(일장석·불투명한 광물)’에 주목했다.
선스톤은 내부에 금속 불순물이 있는 반투명한 돌로 일정 방향으로만 아름다운 패턴의 빛을 전달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바이킹의 난파선에선 아직까지 그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16세기에 난파된 영국 선박에서 거칠고 하얀 결정이 발견되면서 선스톤이 항해에 이용됐을 것이란 추측에 힘이 실렸다. 영국 선원들은 같은 바다를 항해했고 앞서 수 세기전 영국 본토를 침입한 바이킹에게서 많은 항해기술을 배웠기 때문이다.
순도가 높은 방해석과 근청석, 전기석 결정은 특정 방향으로만 직진하는 편광(빛)을 볼 수 있다. 이 광물을 하늘에 대고 돌리면 태양이 하늘에 가리거나 수평선 너머로 저물어도 특정 방향으로만 직진하는 태양 주변의 고리 형태 패턴을 볼 수 있다. 편광 고리를 본 방향을 선으로 이으면 구름이 아무리 짙어도 태양의 방향과 위치를 알 수 있다. 태양의 위치는 장거리 항해에서 가장 확실한 기준점으로 쓰인다.
외트뵈시로란드대 연구진은 더 나아가 북반구의 춘분과 하지에 노르웨이 베르겐과 그린란드 해안의 바이킹 정착지 간 이뤄진 3600회의 항해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했다. 통상 서쪽으로 곧장 가면 바이킹 전함 속도로 3주가 걸리는 거리다. 결정의 유용성을 찾기 위해 구름 양과 항해에 사용된 광물 종류, 사용 빈도를 바꿨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선스톤 중 방해석과 근청석, 전기석을 이용해 태양 위치를 3시간마다 확인하면 제때 그린란드에 도착할 평균 확률이 92~100%인 것으로 나타났다. 만에 하나 4시간마다 위치 찾기에 사용하면 그린란드에 도착할 확률은 32~59%로 내려갔다. 5~6시간마다 읽으면 배가 목적지는커녕 육지에 도착할 확률이 확 내려간다.
선스톤을 아침과 오후에 같은 횟수로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아침에만 주로 측정하면 배가 급격히 북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후에만 주로 사용하면 배의 항해 방향이 남쪽으로 크게 틀어져 목적지에서 멀어졌다.
과학교양서인 《과학과 바이킹》의 저자 스티븐 하딩 영국 노팅엄대 교수는 “바이킹은 뛰어난 조선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흐린 날씨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했다면 모두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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