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현금 왕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한국에선 30년 전에나 볼 수 있었을 법한 현금결제가 사회 곳곳에서 일상화돼 있습니다.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조차 적지 않은 상점과 식당이 신용카드 결제를 받지 않아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일본 여행을 하면서 현금을 충분히 환전하지 않고 왔다가 고생한 경험이 있는 분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 내에서도 ‘캐시리스 사회’ 측면에선 일본이 ‘후진국’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습니다.
일본 정부가 비현금결제 비율이 20%에 불과한 현실을 고치기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더 이상 현금결제만 되는 상황을 방치했다가는 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다고 본 것입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내달에 무현금 결제 보급정책 마련을 위해 금융사와 카드사, 편의점 등 소매업계 전문가들을 소집한 산·관·학 협의회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일본의 현금결제 의존도가 너무 높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선 것입니다.
일본은 국제 비교가 가능한 2015년 현재 비현금결제 비율이 18%로 한국(89%)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중국(60%)과 영국(55%) 등에 비해서도 크게 낮습니다. 2016년에도 비현금 결제비율은 20%에 그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2027년까지 현금 이외 결제비율을 40%로 높이겠다는 정부 목표 달성에 ‘빨간불’이 켜진 것입니다.
현금위주 결제가 지속되는 까닭에 일본 사회는 적잖은 손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근 일본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크게 늘었지만 신용카드사용 등이 제한된 까닭에 소비가 비례해 늘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비자카드 조사에 따르면, 소매점 등에서 현금 밖에 사용할 수없는 것에 불만을 지닌 방일 여행객의 비율이 40%에 달했습니다. 2020년에 정부 목표대로 방일객 4000만 명을 달성하더라도 현금사용에 따른 쇼핑 위축으로 1조2000억엔(약 12조원)의 기회손실이 발생할 것이란 추산도 나옵니다.
현금거래는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합니다. 현금 운송비용과 ATM 설치 등 유통 비용이 올해만 8조엔(약 80조원)가량 든다는 지적입니다. 소매점의 부담도 큽니다. 노무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각 점포 계산대에서 현금 잔액을 확인하는 작업에 걸리는 시간은 점포 1개당 1일 평균 2시간 반에 달했습니다. 업무 마감 후 한참 동안을 돈 세는 것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현금결제를 줄이기 위해 과거 한국의 정책 사례도 연구하고 나섰다는 소식입니다. 한국은 1999년에 연간 카드 이용액의 20%를 공제하는 제도를 마련해 3년간 신용카드사용 금액이 7배로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일본도 한국과 비슷한 소득 공제안을 논의하고 2019년도 예산과 세제개정안 등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의 사례를 참조해 시대에 뒤쳐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결제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요. 결과가 주목됩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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