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反경쟁적 '국가개입주의'의 끝은

입력 2018-04-10 17:47  

자영업 문제 본질은 영세업자 과다진입인데
대기업과 갈등구조로 모는 '생계형 적합업종'
인기영합 거두고 경쟁 촉진해 시장 넓게 써야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객원논설위원 >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는 해학적 독설로도 유명하다. “우리가 결혼하면 당신의 지성과 내 미모를 가진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는 이사도라 덩컨의 편지에 “추남인 내 얼굴과 당신의 텅 빈 머리를 가진 아이가 생길지 모르지요”라고 응수했다. 외모와 지성의 조합에서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쇼의 익살은 경제학으로 치면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가설이다.

정부가 칸막이 규제로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를 보호하면 경쟁력이 제고될 수 있을까. ‘안주(安住)효과’로 도리어 경쟁력이 떨어지고 국가 의존이 타성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가설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이어 최근 경제민주화 강화에 편승해 정부·여당이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안은 대기업의 특정사업 진출로 어려움을 겪을 경우 소규모 상인이나 소상공인 단체가 정부에 해당 품목의 ‘적합업종’ 지정을 요청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골자다. 공권력으로 ‘내 경쟁자를 몰아내 달라’는 것이다. 그 자체가 반(反)경쟁적이다.

그 어떤 변형이라 하더라도 적합업종제도에는 치명적 오류가 내재돼 있다. 적합업종의 출발점은 ‘대기업 대(對) 중소기업’의 2분법적 갈등 구조다. 하지만 경쟁은 어떤 경우에도 ‘개체’ 간의 경쟁이지 ‘집단’ 간의 경쟁일 수 없다. 집단 간의 경쟁이라면 ‘종(種)의 이익’을 위해 이타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개별 중소기업은 소비자에게 자신의 물건을 팔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물건을 팔면 여타 동료 중소기업의 시장기회를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대기업의 횡포가 아니라 영세업자의 ‘과다진입’이다. 대기업의 진입을 막으면 그만큼 빈자리로 남을까. 아니다.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은 더 과밀해질 수 있다.

적합업종 지정제도는 논리적으로도 자가당착이다. 중기 적합업종이 진정 존재한다면 제3자 개입은 불필요하다. 업종 특성상 중소기업이 더 효율적이라면 ‘시장의 힘’에 의해 대기업이 자연스럽게 경쟁에서 밀려날 것이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최적자(fittest)가 도태될 수는 없다. 결국 중기 적합업종은 작위적인 개념이다. 그 기저에는 다수를 이루는 중소기업의 이해를 우선 반영하겠다는 ‘인기영합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제도는 과거 적합업종과는 차원이 다르다. 신청 대상 업종과 품목에 제한이 없다. 일부 소상공인의 연명으로도 지정 신청이 가능하다. 과거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민간자율 형식을 취해 통상마찰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계형 적합업종은 중소벤처기업부 심의위원회가 적합업종 심의 및 지정까지 모든 업무를 관장하게 된다. 심의위원회는 사업 축소와 철수까지 권고할 수 있으며 불이행 시 별도의 이행 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상대국 정부 규제로 인한 자산가치 하락 등 재산권 침해를 통상 규범 위반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업 철수 권고와 이행 강제금이 부과되면 통상 분쟁은 불문가지다. 대기업 진입규제가 국내 중소기업에 기회를 준다고 볼 수 없다. LED조명 사업에서 보듯이 국내 대기업의 진입을 규제하자 외국 업체가 반사이익을 누렸다. 국내 기업을 역(逆)차별하는 ‘규제의 역설’인 것이다.

그렇다면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으로 얻는 ‘규제익(規制益)’은 무엇인가. 과거 적합업종 지정(2011년) 전후의 경제성과 비교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중기 적합업종 지정은 자본지출, 무형자산 증가율, 연구개발(R&D), 종업원 증가율 등에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오히려 하락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생계형 적합업종 역시 자충수가 될 개연성이 높다.

그럼 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인가. 문재인 정부의 국가개입주의 국정철학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에서 ‘내 생계마저 책임지는 국가’로 나가기 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 삶을 책임지는 것은 자신이지 국가일 수 없다. 한마디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은 시장을 잘게 쪼개 특정계층에 우선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특정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 정책일 수 없다. 시장은 넓게 써야 혁신이 일고 부가 창출된다. 국가개입주의의 끝은 노예와 가난이다. 하이에크의 말이다.

dkcho@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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