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적폐청산 어떻길래…
과거 정권 정책 뒤엎으며
코드 맞추려 '적폐 덧씌우기'
부처TF '과잉'이 혼선 불러
"적폐 될라" 복지부동
"정책 총대 메다 정권 바뀌면…"
본업 놔두고 줄서기만 몰두
공직사회 '무사안일' 심각
[ 임도원/백승현/손성태/구은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각 정부 부처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활동과 관련, “적폐청산은 공직자 개개인의 처벌이 목적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취임 후 정부 적폐청산의 부작용을 지적한 첫 발언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인 각 부처의 TF 활동이 과거 정책과의 단절 등 혼선을 부르고 있는 데다 이로 인해 공직사회가 움츠러드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설명이다.
◆靑, “부처가 코드 맞추려 오버”
문 대통령은 이날 “(각 부처의 적폐청산 움직임으로) 공직사회가 과도하게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유의해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부처별 적폐청산 TF가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일부 혼선이 있었다”며 “정부 방침을 따랐을 뿐인 중하위직 공직자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정책상의 오류만으로 (해당 공무원이) 사법 처리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과거 정권의 정책적 실패 및 오류 등에 대한 각 부처의 무차별적인 적발과 검찰 수사 등에 대한 ‘자제령’을 내린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 “각 부처가 적폐청산을 국정과제로 삼은 새 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오버’하면서 전선이 무차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일부 부처에선 장·차관이 과도하게 나서 분위기를 잡는 바람에 공직자들이 본업보다 줄서기에 몰두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공직사회의 사기가 떨어지고, 오히려 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를 부추겨 정상적인 국정운영에 방해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시 따라 일했더니 수사 대상
각 정부 부처에서는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이른바 ‘숙청 작업’이 한창이다. 장·차관에서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있다. 대부분 ‘윗선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 혐의다. 교육부의 적폐청산 TF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달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참여한 황우여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 전·현직 교육부 공무원 25명을 직권남용과 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수사 의뢰할 것을 권고했다. 여기에는 실무를 맡았던 일선 직원도 대거 포함됐다. 해양수산부에서는 지난 2월 김영석 전 장관과 윤학배 전 차관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위법 혐의가 없는 정책 추진에 대해서도 ‘적폐 덧씌우기’가 이뤄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행혁신위원회는 지난달 “과거 정권이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벌였던 대출 및 재건축 규제 완화 정책은 잘못된 행정 관행이었다”고 발표했다. 지난 정권에서 추진한 정책을 전면 뒤엎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환경부 환경정책제도개선위원회는 지난달 박근혜 정부 때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사업 추진을 비밀 TF에 의한 적폐로 규정하고 사업 재검토를 요구했다.
◆“지금 정부 일도 적폐될 수도”
관가를 휘젓고 있는 적폐청산 작업에 공무원 사회는 격앙된 분위기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적폐청산 작업에 반발한 한 사무관이 “차라리 사표를 내겠다”고 했다가 보류된 일이 있었다. 고용부 관계자는 “TF에서 전 정권 정책과 관련해 전문가들에게 기고문 원고료를 준 것도 적폐로 문제삼았다”며 “지금 정부도 최저임금 인상을 옹호하는 전문가 위주로 기고문을 받는데 이것도 처벌해야 하는 것이냐”고 말했다.
‘괜히 정부 정책에 총대를 멨다가 정권 바뀌면 탈 난다’는 두려움에 복지부동 움직임도 급속히 퍼지는 분위기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그저 면피용으로만 일하거나 현 정권 인사들에게 줄이나 대려는 공무원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국무조정실은 지난 2월 정기준 전 경제조정실장이 심장마비로 숨진 뒤 후임자를 물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요즘 같은 흉흉한 분위기에서는 가상화폐대책 등 주요 경제 현안을 총괄해야 하는 경제조정실 같은 곳에 가서 총대를 메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전했다.
임도원/백승현/손성태/구은서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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