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호봉제 유지하며 정규직 전환 강행, 비겁한 포퓰리즘 아닌가

입력 2018-04-11 17:30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작년 7월 발표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의 2단계 조치다.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추진해 온 1단계 전환 대상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국공립교육기관 등이다. 2단계는 자치단체 출연·출자기관과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 자회사 등으로까지 전환 대상 범위를 넓혀 6월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우려스런 것은 1단계 전환과정에서 드러난 온갖 문제점을 제대로 해결하지도 않은 채 2단계를 밀어붙인다는 점이다. 임금체계 개편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정규직 전환 대상자에게 연공서열식 호봉제 대신 직무 등급과 업무 평가 등에 따라 임금을 정하는 직무급제를 적용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정규직 전환 대상자에게 호봉제를 적용하면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는 우려가 제기된 데 따른 대책이었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을 마친 대다수 기관은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직무급제를 도입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호봉제를 선호하는 노조의 반발을 의식한 때문이다. 노조가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2단계 정규직 전환도 호봉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이뤄질 게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호봉제 폐단을 막기 위해 도입된 성과연봉제마저 폐지되면서 “공공기관 개혁은 물 건너갔다”는 지적이 나온 마당이다. 노조 눈치만 보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정부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제대로 준비 안 된 채 추진된 정규직 전환이 낳은 문제점은 이뿐만 아니다. 인천공항공사와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추진 과정에서 극심한 노·노(勞·勞) 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청년들에게 돌아가야 할 신규 일자리 창출을 막는다는 지적도 많다.

정부는 2020년까지 20만5000명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서두를 일이 아니다. 직무별·업종별 실현 가능성과 부작용 등을 꼼꼼히 따져 봐야 하며, 그에 따른 속도 조절도 필요하다. 임금체계 등을 제대로 손보지 않은 채 정규직 전환을 지속적으로 늘렸다간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재정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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