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해야 하나

입력 2018-04-13 17:48   수정 2018-04-14 07:08

[ 김진수 기자 ]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는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중소기업 간 합리적 역할 분담과 경제 양극화 해소 등을 위해 만들어졌다. 동반성장위원회가 2011년부터 자율권고·합의로 운영 중이다. 적합업종은 제조업 54개, 서비스업 19개 등 73개 품목이 지정돼 있다. 이 중 지난해 시한이 끝난 47개 품목에 대해 올 상반기까지 만기 유예 조치가 취해진 상태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700만 소상공인 비상대책위원회 총회’를 열고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의 4월 임시국회 통과를 요구했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 등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중소기업과 중소상인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주장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민간 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가 합의 도출과 공표권한을 위임받았지만 세부 절차와 이행 수단에 대한 법적 근거가 미약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적합업종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련 특별법은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각각 발의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에 심의 계류 중이다.

법제화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오히려 산업 전반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는 2006년 폐지된 ‘중소기업 고유업종제’와 닮은 점이 많다. 당시 중소기업 고유업종은 벽시계, 안경테, 우산 등 180여 개 품목이었다. 시행 이후 관련 업종의 생산량이 감소하는 등 부작용이 많아 폐지됐다. 외국계 기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악용해 국내 대기업을 시장에서 배제시키고 시장을 독식하려던 사례도 있었다. 법안에 지정 대상 업종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아 규제 대상이 모호하고, 무차별적인 민원 제기로 제도가 남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찬반 의견을 들어봤다.

[찬성] 대기업 진출로 소상공인 생업 위협… 사업영역 보호 위해 '법제화' 필요

'적합업종제' 소상공인 변화와 혁신에 한몫

2010년 이후 대기업이 골목상권 진출을 확대하면서 소상공인의 사업 영역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져 갔다. 이에 정부는 ‘중소기업 상생 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에 근거해 동반성장위원회가 대·중소기업 간 자율 합의 형식으로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을 자제하는 ‘적합업종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자율 합의의 실효성 부재, 한시적 지정 등 현행 제도의 한계와 문제점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법제화 요구도 확산됐다.

적합업종제도는 2011년부터 320개 품목을 신청받아 109개 품목에 대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합의로 시작됐다. 당시 동반성장위원회는 확장자제, 진입자제 등을 권고했다. 그러나 최대 권고기간(6년)이 만료되는 품목이 다수 발생함에 따라 현재 국회를 중심으로 생계형 업종만이라도 사업 영역에 대한 보호가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에서 다양한 법률안이 발의돼 있다.

한국의 경제구조는 대기업 중심의 성장 정책으로 인해 구조적 불균형이 심화돼 왔다. 제조뿐 아니라 유통·온라인을 넘어 최근에는 모바일 분야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은 대체로 대기업이다. 소수의 대기업이 시장을 지배함으로써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점차 시장에서 내몰리고 있다. 변화와 혁신을 통해 성장을 지속할 여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독과점적 시장구조는 자유시장경제의 활력과 성장을 저해하는 독배이다. 궁극적으로는 소비자의 후생 저하를 초래할 뿐이다. 적합업종제도는 소상공인의 생존권 보호를 넘어 시장의 활력 회복에 기여할 수 있다.

소상공인은 전체 사업체 수의 86.4%(306만 개), 종사자 수의 37.9%(605만 명)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근간이 되고 있으며, 서민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소득이 감소한 소상공인은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대기업이 거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순대, 떡볶이, 어묵, 음식점, 제과점 등 소상공인 사업 영역까지 진출해 소상공인의 안정적 생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2015년 소상공인의 월평균 매출소득(영업이익)은 215만원으로, 2010년에 비해 13.3% 감소했다. 창업 5년 내 생존율도 27.5%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적합업종제도의 법제화를 통해 보다 강력하게 영세 소상공인 사업 영역을 정부가 직접 보호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적합업종제도가 시행돼 오면서 소상공인은 다양한 변화와 변신을 추구했다. 동네빵집들은 협업으로 다양한 레시피 개발과 공동 구매, 공동 브랜드 등을 통해 소비자 마음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청년 제빵사들은 소규모 빵집을 차리고, 성장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어묵 생산 기업들은 고급 어묵을 출시해 시장을 넓혀 나갔다. 자동차 제조부품의 경우 대기업이 공급한 폐부품을 중소기업이 가공 후 공동 브랜드로 수출하는 사업모델도 구체화하고 있다. 적합업종제도는 단순한 보호를 넘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적합업종 법제화는 우리 경제의 동력을 회복하고 활력을 높이며,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소상공인의 생존과 혁신을 통해 건강한 산업생태계 구축에 기여하는 정책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만 법제화 추진 때 기업 활동의 위축, 새로운 분야 진출에 대한 주저, 투자 활동의 감소 등을 고려해 민생에 영향이 큰 영세 업종·품목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반대] 경쟁 규제하면 해당 업종은 퇴보, 보호대상 모호… 무차별 민원 우려

일자리 창출 정책과 충돌… 통상마찰 가능성도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은 소상공인을 실질적으로 돕는 방안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대기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에서 사업을 못하게 하는 내용만 들어 있다. 대기업의 사업 참여 기회를 제한하면 소상공인을 돕게 된다는 게 이 법의 전제다. 하지만 경쟁 제한이 소상공인의 경영 안정과 소득 향상을 지속적으로 보장한다는 근거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대기업 진입 규제로 특정 소상공인, 또는 중소기업만 혜택을 받는 부작용이 더 우려된다.

생계형 적합업종은 우선 소비자 외면과 시장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 대부분의 생계형 업종은 소자본으로 사업하기 쉬워 경쟁이 치열하다. 이런 시장에서 대기업 제품과 서비스가 소비자로부터 선택받는다면 그만큼 소비자의 필요를 잘 충족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대기업을 빼면 정부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 된다. 경쟁을 규제해선 소비자가 만족하는 상품·서비스가 나오기 힘들다. 특별법을 통한 규제는 해당 업종의 퇴보를 의미한다.

생계형 적합업종의 정의와 범위도 모호하다. 현 법안대로라면 신청자에 대한 자격 제한이 거의 없는 셈이어서 무차별적인 신청이 쇄도할 전망이다. 이를 일일이 판단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특정 업종만 특혜를 줬다는 논란이 발생할 여지도 있다. 정부가 이를 처리하기 위해 큰 행정 비용을 치러야 하는 문제도 있다. 신청 자격을 소상공인단체로 제한하는 식으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기업이 판단해야 할 시장 진출, 인수합병(M&A) 등을 정부가 대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별법에선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공정하게 한다고 한다. 하지만 별로 나을 게 없어 보인다. 심의위원회의 전문성과 대표성은 늘 시비를 낳을 것이다. 자신들의 대표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결정한 사안을 기업이 승복할 리 없다. 승복하지 않았을 때 재심의를 청구할 수 있는 절차도 없다. 그런데도 정부 결정에 따르지 않으면 매출의 30% 이내에서 이행 강제금이 부과된다. 매출 30%면 기업을 부도낼 수도 있는 가혹한 징벌이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직원 생계는 누가 책임질 것인지 모르겠다.

특별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영역과 대상도 불분명하다. 소상공인의 사업 영역에는 중소기업도 많다. 생계형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중소기업을 규제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기업이 소상공인 이익을 늘 침해하는 것도 아니다. 대형마트 인근에 생계형 소상공인이 즐비한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요즘은 전통시장에서 먼저 대기업 유통 점포를 유치하기도 한다. 이런 곳은 사람이 몰리고 장사도 더 잘 된다. 대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이 어우러져 다양한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불합리한 규제로 통상 마찰까지 우려된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기업의 시장 진입을 제한하고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특별법에서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경쟁을 제한하기 때문에 통상마찰은 필연적이다. ‘규제’에서 ‘상생’으로 개념을 바꾸고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통상마찰에 대비하는 길이다.

무엇보다도 특별법은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규제를 통해선 일자리를 늘릴 수 없다. 규제 법안은 상생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경제성장을 둔화시킨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다. 국회는 효과도 없는 법으로 생색내기보다 근본적인 소상공인 육성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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