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는 동서양 문화가 교차하며 선명한 무늬를 만든 독특한 지역이다. 1999년 중국에 반환되기까지 442년간 이어진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는 마카오에 유럽의 모습을 옹골차게 새겨뒀다. 거리 광장 건물 이정표 등 눈길 닿는 풍경마다 아시아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대기에 꽉 찬 광둥어의 살랑거림처럼 중국적인 면면도 그에 못지않게 존재한다. 시대의 섞임도 인상적이다. 익히 알고 있듯 카지노는 마카오의 정체성이다. 24시간 불야성을 이루는 카지노들은 실적에서 라스베이거스를 이미 능가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현대적인 오락문화의 끝자락이 진득한 역사의 향기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유럽풍 색조, 마카오 역사지구
마카오 역사지구의 성 라자루 성당 지구는 마카오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르투갈풍의 거리로 소문난 곳이다. 한적한 골목에 들어선 집들은 알록달록한 원색과 노란색이 섞여 있다. 이곳의 길바닥은 석회석을 네모꼴로 잘라 모자이크처럼 꾸며놨다. 포르투갈의 도로포장 기법으로 ‘칼사다(calcada)’라고 부른다. 물결 별 숫자 등의 무늬를 그려두거나 기하학적 형상을 새겨넣기도 한다. 마카오 옛 시가지의 바닥이 모두 이런 식인데 오래 걸어도 지루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건물을 끼고 난 포르투갈 양식의 타일 길을 따라가면 골목과 골목이 이어진다. 깊숙한 곳은 마치 홍콩의 뒷골목을 연상케 하는 세기말적 풍경이 펼쳐진다.
골목 안쪽으로 하늘색 우편함, 청록색 대문, 민트색 벽면, 레몬색 커튼 등이 연이어 펼쳐져 따뜻하고 사람냄새가 물씬 난다. 색이 주는 효과가 이렇게나 크다.
길 바깥쪽으로 무어리시 배럭이라는 이름의 건물이 눈길을 빼앗는다. 기둥과 이국적인 아치로 만들어진 이 건물을 지역사람들은 ‘항무국(港務局)’이라 부른다. 1874년 이탈리아의 건축가 카슈토(Cassuto)가 지은 무어리시 배럭은 인도에서 파병된 용병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용병은 마카오에 거주하던 포르투갈인을 보호하고 치안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건너온 이들이었다. 일종의 자위용병대인 셈이다. 관공서이기 때문에 테라스 외 내부지역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마카오를 대표하는 이미지인 ‘성 바울 성당(Ruinas de S. Paulo) 유적은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이다. 1644년 완공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큰 성당이자 동양 최초의 유럽식 대학으로 위용을 자랑했다. 원인 모를 화재로 소실된 탓에 지금은 석조로 만든 전면부만 남아 있다. 섬세한 조각상과 우아한 색조의 전면부는 여전히 눈길을 모은다. 언제나 북적거리는 긴 계단을 오르면 성당까지 닿는다. 마카오 옛 시가지의 풍경은 중국인이 많다는 것만 빼면, 유럽 풍경과 무엇이 다를까 싶다.
성 바울 성당을 나와 오른편으로 걸어나오면 ‘연애거리(Travessa da Paixao)’라 불리는 작은 골목이 나온다. 현지어로는 연애항(戀愛港)이라 불린다. 건물 몇 채가 전부인 아담한 규모지만 감성적인 컬러가 골목에 흘러넘쳐 여심을 저격한다. 아울러 이곳에서 보는 성 바울 성당의 모습도 꽤 그럴듯하다. 마카오에 발을 디뎠다면 누구나 한번은 찾는 세나두 광장(Largo do Senado)은 마카오 역사지구 산책의 시작점이 되기도, 종점이 되기도 하는 곳이다. 끝없이 연결된 물결무늬 타일과 이국적인 건물들이 빚어내는 하모니는 유럽풍 분위기의 절정을 이룬다. 광장에 스며든 색감 또한 이곳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의 표정만큼 밝고 다채롭다.
파스텔풍의 타이파와 콜로안
타이파 빌리지(Taipa Village)에는 지중해풍의 키 낮은 건물들이 빚어낸 오밀조밀한 골목이 이어진다. 타이파는 과거 포르투갈인들이 마카오 반도의 번잡함을 피해 별장지로 조성한 마을이다. 미로와 같은 이 동네의 좁은 통로는 마카오의 현재와 과거를 잇는다. 그리고 결국은 색으로 정리된다. 원색의 빨래, 담장의 벗겨진 페인트에서는 현지인 삶의 흔적도 진하게 전해진다. 육포거리로 유명한 쿠냐 거리(Rua do Cunha)엔 산뜻한 맛집과 길거리 간식집이 가득하다. 쿠냐 거리의 맞은편은 오르막으로 향한다. 크게 가파르지 않아 걸음은 가뿐하다. 아기자기한 타이파의 분위기가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바뀌는 길의 끝에 당도하면 다섯 채의 아름다운 주택이 서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타이파의 주택박물관(Casa Museu de Taipa)이다.
콜로안 빌리지(Coloane Village)는 타이파와 비교해 좀 더 조용하고 수수하다. 하지만 고운 색상의 건물들로 가슴이 따뜻해지기는 마찬가지다. 이 동네에서 탄생한 로드 스토스 베이커리(Lord Stow’s Bakery)의 에그타르트 맛처럼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바다의 위험으로부터 어민을 보호하는 여신인 ‘마조’를 모시는 도교사찰, 아마사원(Templo de A-Ma)은 중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 도시가 마카오라고 불리게 된 유래의 주인공이자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1488년 건립)이다. 붉은 벽과 청록색 지붕, 붉은 초와 노란색 향의 강렬한 대비가 소원을 비는 신자들의 간절함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나선형의 향은 특히 시선을 모은다. 도교 신앙에선 향을 피우면 소원이 하늘에 닿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긴 시간 동안 피어오르는 향을 필요로 했다. 나선형의 향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고, 이를 만수향(萬壽香)이라고 부른다. 속설에 의하면 타고 있는 향의 재를 맞으면 재수가 좋다고 한다. 이를 믿는다면 선택은 아마사원이다.
마카오 역사지구의 오르막길 한편에 자리잡고 있는 ‘만다린 하우스(Casa do Mandarin)’는 ‘로우카우 맨션(Lou Kau Mansion)’과 함께 마카오를 대표하는 중국식 저택이다. 청나라 말기의 정치가인 정관응(鄭觀應)이 이곳에 살았다. 12개 동, 60여 개나 되는 방을 가지고 있을 만큼 거대한 규모의 저택이다.
붉은색이 넘쳐 흐르는 거리인 펠리시다데(Rua de Felicidade)는 포르투갈어로 ‘행복’이나 ‘기쁨’을 의미한다. 중국인에게 붉은색은 행운과 복을 의미하기에 이름과 분위기가 꼭 맞아떨어진다. 이 거리가 지닌 독특한 분위기를 찾아 마카오의 소문난 음식점도 속속 들어섰다. 다양한 영화의 촬영지로도 변신해 존재감을 알렸다. 그중 하나가 김수현 전지현 등이 나왔던 ‘도둑들’로, 당시 이국적인 분위기로 화제를 모은 장면들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김하민 여행작가 ufo204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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