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능원 120명·KEI 50명
인건비 감당 못해 내보내
다른 곳도 수십명씩 계약 해지
"비정규직 계약 끝나면 무작정 해지 통보"
[ 고경봉/임도원 기자 ]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국책연구기관 비정규직 연구원이 무더기로 해고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인건비가 한정된 상황에서 비정규직을 모두 고임금 정규직으로 돌리기 어렵게 된 연구기관들이 전환 시한을 앞두고 비정규직을 대거 내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각 국책연구기관에 따르면 26개 산하 국책연구기관 중 10여 곳이 정규직 전환계획을 확정했다. 이 중 여러 연구기관이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기존 비정규직 연구원 상당수의 계약해지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비정규직 직원 130여 명 중 3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나머지 100명가량 중 절반은 비정규직으로 두고 50명에겐 계약해지를 통보할 예정이다. 직업능력개발원은 해고 인원이 더 많다. 전환 대상 비정규직 260명 중 약 50명만 정규직으로 바뀐다. 90여 명을 제외한 120명가량은 짐을 싸야 한다. 전환계획을 확정 지은 다른 연구기관도 많게는 수십 명이 이미 해고됐거나 계약해지를 앞두고 있다.
이번에 해고되는 비정규직은 주로 단기계약직 연구원이거나 위촉연구원이다. 국책연구기관은 매년 정부 출연금을 받아 고정 과제를 수행하는 고유 업무 외에 정부나 외부 단체 등으로부터 별도의 과제를 따내 인건비를 충당한다. 이 수탁 과제가 대부분 1~3년짜리 프로젝트 형태이다 보니 연구기관들은 단기계약직이나 위촉연구원을 채용해 연구를 수행해 왔다.
정부가 연구기관 간 경쟁 촉진을 명분으로 출연금을 줄이자 기관들은 경쟁적으로 수탁 과제 비중을 늘리면서 위촉연구원 등의 채용을 확대했다. 2014년 2355명이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기관의 비정규직은 지난해 2500명으로, 35% 안팎이던 비율이 42%까지 늘어났다.
그동안 비정규직을 대폭 늘린 국책연구기관들은 별도의 인건비 예산 없이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려다 보니 비정규직 상당수를 한꺼번에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특히 각종 프로젝트와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정규직의 꿈에 부풀었던 위촉연구원들은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가장 먼저 해고당하는 신세가 됐다.
국책연구기관 중에는 비정규직 대부분을 정규직으로 바꾼 사례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바꿨고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대상자의 상당 부분을 전환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이들 기관은 비정규직 비중이 45%를 밑돌았다.
이번에 대량 해고가 발생한 KEI와 직업능력개발원은 비정규직 비율이 60% 안팎에 이른다. 아직 전환 계획을 확정짓지 못한 곳 중에선 한국교육개발원 교통연구원 등 비정규직 비율이 60~70%를 웃도는 곳이 즐비하다. 가장 큰 비정규직 해고 폭탄은 아직 터지지 않은 셈이다.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들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에서만 최소 700~800여 명의 비정규직이 퇴출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 연구원 관계자는 “아직 정규직 전환 계획을 확정짓지 못한 연구기관은 계약 만료 기간이 돌아오는 비정규직은 전환 대상에 넣지 않고 무작정 계약을 해지하고 있다”며 “전환 대상 비정규직 숫자를 미리 줄여 전환율을 높게 보이게 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해고된 공공부문 비정규직들의 한탄이 이어지고 있다. 직능원 일학습병행제성과관리지원센터에서 위촉연구원으로 일했던 한수연 씨는 게시판에서 “올해 12개 과제를 배정받아 진행하고 있었는데 연구조 9명 중 나를 포함한 6명이 해고를 통보받았다”며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정규직화를 하는 것인데 이 정책 때문에 오히려 연구조원이 해고됐다”고 토로했다.
한 연구원 인사담당자는 “대통령이 취임 후 제일 먼저 찾아 ‘비정규직 제로 사업장’을 선언한 인천공항공사도 결국 본사 정규직 전환이 3분의 1에 그쳤는데 예산이 빡빡한 연구기관에서 100% 전환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며 “국책연구기관의 비정규직은 대우가 괜찮고 경력 쌓기에도 도움이 돼 고학력자들이 연구직을 얻기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해왔는데 정부가 이를 걷어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경봉/임도원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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