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탈출·망명… '영화 같은 삶' 배우 최은희 별세

입력 2018-04-17 02:43  

김지미·엄앵란과 '원조 트로이카'
신상옥 감독과 이혼 후 홀로 납북
北서 재회…8년 만에 北 탈출·망명



[ 유재혁 기자 ]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산 배우 최은희 씨가 1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1926년 11월 경기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2년 연극 ‘청춘극장’에 출연하며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연극 무대를 누비던 그는 영화 ‘새로운 맹서’(1947)로 스크린에 데뷔한 뒤 서구적이고 개성 있는 미모와 연기력으로 단숨에 주목받는 신예로 떠올랐고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1950~19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군림했다.

고인은 1953년 신상옥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 감독과 사랑에 빠졌고 이듬해 결혼했다. 이후 신 감독과 함께 ‘꿈’(1955), ‘젊은 그들’(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자매의 화원’(1959), ‘동심초’(1959) 등을 찍으며 동지적 관계로 발전했다.

1961년작 ‘성춘향’은 세기의 대결로 화제가 됐다. 고인과 신 감독이 ‘성춘향’을 촬영할 때, 홍성기 감독은 당시 19세이던 김지미를 주연으로 ‘춘향전’을 찍고 있었다. ‘홍 감독의 10대 춘향이와 신 감독의 40대 춘향이의 맞대결’은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

고인은 전성기에 11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계를 이끌었다. 23년간 이어진 고인과 신 감독의 협업은 1976년 이혼으로 끝이 났다. 고인은 1978년 1월 홍콩에 홀로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됐다.

납북 6년째인 1983년 3월 김정일로부터 연회에 초대받은 고인은 그 자리에서 신 감독을 만나게 된다. 신 감독도 고인이 납북된 그해 7월 사라진 최은희를 찾으러 홍콩에 갔다가 북한으로 끌려갔다. 일각에선 신 감독의 자진 월북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돌아오지 않는 밀사’ ‘탈출기’ ‘사랑 사랑 내사랑’ 등 17편의 영화를 제작하며 옛 전성기를 재현했다. 고인은 북한에서 만든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김정일의 신뢰를 얻은 두 사람은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 현지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했다. 부부는 이후 미국에서 10년이 넘는 망명생활을 하다가 1999년 영구 귀국했다. 고인은 2001년 극단 ‘신협’ 대표로 취임했고 2002년 뮤지컬 ‘크레이지 포유’를 기획·제작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하던 신 감독은 2006년 4월 80세를 일기로 먼저 세상을 떴다. 남편을 떠나보낸 뒤 고인은 허리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됐다. 별세하기 직전까지 서울 화곡동 자택과 병원을 오가며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투석을 받아왔다. 유족으로는 신정균(영화감독)·상균(미국 거주)·명희·승리씨 등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9일 오전.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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