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반도체 영업기밀' 지키려는 삼성… 뺏으려는 고용부… 기다리는 중국

입력 2018-04-17 09:42   수정 2018-04-17 10:59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 유출될 처지
"일본이 도시바 중국 매각 저지한 이유 알아야"





세계 시장을 점령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운명이 오늘 결정된다.

국민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17일 오후 2시 삼성전자의 정보공개 행정심판 청구 결과를 발표한다. 수원지법 행정소송 판결 전까지 고용노동부가 임의로 삼성전자 각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도록 해달라며 삼성전자가 청구한 심판이다.

이번 사태는 지난 2월 대전고등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허용석 부장판사)가 삼성전자 온양공장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고용노동부는 보고서 내용이 영업기밀에 해당하더라도 공익 목적이라면 제3자에게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JTBC의 한 PD는 이를 이용해 공개 판결이 난 온양 반도체 공장 외에도 기흥·화성·평택 반도체공장과 구미 휴대폰공장 보고서를 공개해달라고 신청했고, 고용노동부는 임의로 공개를 결정했다.

삼성전자는 고용노동부의 보고서 공개를 막아달라고 수원지법에 행정소송을 내는 동시에 행정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 고용노동부가 임의공개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행정소송에 제출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에 국가 핵심 기술 여부 판단도 요청했다.

고용노동부는 오는 19일까지 구미·온양 반도체 공장을, 20일까지 기흥·화성·평택 공장 보고서를 공개할 계획이다. 17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공개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삼성전자 영업기밀을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수원지법의 최종 판단은 이번 주 내에 나올 전망이지만,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기에 고용노동부의 보고서 공개보다 늦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보고서 공개를 막고 나선 것은 그 안에 반도체 생산 공정 순서, 생산라인 배치도, 사용 장비, 장소별 사용 화학물질 이름과 사용량 등 제조공정 정보가 담겼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기밀을 제외하고 일반에 공개하거나 당사자에 한해 제한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미국 텍사스주에 위치한 삼성전자 오스틴 반도체공장은 사용하는 유해화학물질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공정 순서와 장비 배치 등의 내용은 포함하지 않고 공장에서 사용한 전체 화학물질 정보로 제한됐기에 제조기술 유출 우려도 적다.




보고서 공개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반도체 굴기에 나선 중국으로 한국의 반도체 제조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국가적 규모 예산을 투입해 반도체 생산에 나섰지만, 기술이 부족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통상 한 장의 웨이퍼에서 수백 개 반도체를 생산해야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1~2개 생산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품 처리를 통한 적층 기술이 핵심인 3D 낸드플래시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중국이 한국 기술자 초빙에 공을 들여온 것도 이 때문이다.

작업환경 측정보고서가 공개될 경우 삼성전자가 사용하는 장비와 장비 배치, 공정 별로 사용하는 화학물질과 양 등이 중국에 전해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업계는 이 보고서가 중국 기업들에게 ‘반도체 제조 가이드북’ 역할을 해 기술격차가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산업부도 이러한 우려에 공감하고 있다. 산업부는 지난 16일 산업기술보호위원회 반도체전문위원회를 열었지만 삼성전자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가 국가 핵심 기술인지 판단하지 못했다. 이에 17일 오후 4시 30분경 2차회의를 열고 판단을 내린 뒤 곧바로 발표할 예정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쉽게 비유하자면 중국은 현재 맨 땅에 헤딩하는 상황”이라며 “수를 셀 수 없는 약품과 수백 종의 장비 가운데 어떤 제품을 어디에 얼마나 써야 하는지 알려주는 자료를 쥐여준다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독주는 머지않아 끝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앞서 일본 정부가 도시바 반도체 부문의 중국 매각을 막았던 이유를 한국 고용노동부만 모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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