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Biz] 커지는 '공동소송' 시장… 새 먹거리 늘어 로펌들 '화색'

입력 2018-04-17 19:05  

아이폰 '배터리 게이트' 관련
애플 상대 6만3767명 소송
원고 400명 이상인 사건만 2년 새 5건 이상으로 늘어

대형 로펌은 기업측 대리 맡아
소비자 편에 선 중소 로펌은 인터넷 카페 대상 공격 영업
로펌 간 원고모집 과열 경쟁도



[ 신연수 기자 ]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선 사상 최대 규모의 원고가 참여하는 공동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달 30일 아이폰 사용자 6만3767명은 스마트폰을 더 많이 팔기 위해 배터리 성능을 일부러 떨어뜨렸다며 애플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들은 애플의 부정 행위로 아이폰이 손상되고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에서 1인당 20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총 소송가액은 128억원에 달한다.

기업을 상대로 공동소송을 진행하는 소비자들은 아이폰 사용자뿐만이 아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심리 중인 공동소송 가운데 원고가 400명 이상인 사건만 따져도 최근 2년간 5건이 넘는다. 소비자들의 공동소송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로펌업계에는 화색이 돌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로펌이나 개인 변호사들은 소비자 측을 대리하고, 대형 로펌들은 기업과 정부 편에 서면서 공동소송 시장을 양분하는 모습이다.


대형 로펌은 기업 측 대리가 일반적

공동소송은 기업이나 국가의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 다수가 원고로 참여하는 민사소송이다.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만 명의 원고인단을 구성해 기업이나 정부를 상대로 1인당 10만~100만원가량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에게도 판결 효력이 미치는 미국의 집단소송과 달리 공동소송의 배상 범위는 원고 명단에 직접 이름을 올린 피해자로 한정된다. 공동소송은 제소 자격이 공정거래위원회에 등록된 단체나 한국소비자원, 시민단체 등으로 제한되는 ‘소비자단체소송’과도 다른 개념이다.

대부분의 공동소송에서 피고가 되는 기업 측 대리는 대형 로펌이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2016년 정수기 중금속 성분 검출과 지난해 인체 유해 생리대 논란으로 각각 재판에 넘겨진 코웨이와 깨끗한나라의 변호는 모두 법무법인 광장이 맡고 있다. 2015년 가짜 백수오 판매 사건에 휘말린 GS홈쇼핑과 현대홈쇼핑은 법무법인 태평양이 대리한다. 서버 다운 사건으로 640여 명으로부터 제소당한 가상화폐거래소 빗썸의 법률 대리는 법무법인 화우다.

대형 로펌이 공동소송에서 소비자 측에 서는 것을 꺼리는 이유는 ‘컨플릭트(수임 이해관계 충돌)’ 때문이다. 한 대형 로펌의 파트너변호사는 “자문·송무를 불문하고 대형 로펌의 주요 고객은 대기업과 정부”라며 “이들을 공격하는 소송에 참여하는 것은 영업에 부담을 주는 데다 기존 이해관계와 충돌도 발생할 수 있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법무법인 바른이 독일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과 관련한 공동소송에서 피해자 대리에 나선 것은 상대가 외국 기업이라 가능했다는 게 법조계 해석이다.

소송 기간이 보통 4~5년으로 긴 점은 리스크

중소형 로펌은 대형 로펌과 달리 공격적으로 소비자 공동소송에 나서고 있다. 대기업 일감이 적기 때문에 대형 로펌에 비해 ‘운신의 폭’이 크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한누리처럼 공동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로펌(부티크 펌)까지 등장했다. 이들은 소비자 피해 사건이 발생하면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원고를 모집한다. 원고들로부터 소정의 착수금(1만~3만원)을 받는데 주수익원은 배상금의 10~20% 정도인 성공보수다.

공동소송 시장이 커지면서 원고를 모집하기 위한 로펌들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공동소송을 준비하는 인터넷 카페 회원들에게 ‘우리 로펌에서 소송하면 비용이 더 싸다’는 쪽지를 보내며 호객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KT 해킹 관련 공동소송에서는 원고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정보를 넘기겠다는 인터넷 카페 운영자가 경찰에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인터넷 카페가 활성화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가짜 아이디를 생성해 주는 마케팅 업자를 찾았다가 적발된 변호사도 있다.

로펌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일각에서는 수익성이 기대한 만큼 높지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야 하는 일에 비해 벌 수 있는 돈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5000여 명의 원고인단을 이끌고 공동소송을 했던 한 변호사는 “5000여 명의 소장과 증거서류 등을 일일이 준비하느라 사무실 직원들이 한 달 동안 야근했고 단기 아르바이트 직원까지 고용했다”며 “소송 준비가 정말 어려웠다”고 말했다. 소송 기간이 보통은 4~5년, 길게는 10년까지 걸리는 탓에 수익이 현실화할 때까지 오랜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소송 증가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0대 국정과제’에 미국식 집단소송을 확대하는 방안을 포함했다. 법무부, 공정위 등은 올해 초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공동소송은 무한경쟁 시대로 진입하는 법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놓쳐서는 안 될 분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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