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경보 울려도 "설마, 난 괜찮겠지"
반드시 마스크를 써 스스로 건강 지켜야
김진세 <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
몇 년 전 이른 봄. 산동네 중턱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답답한 아파트 생활에 지쳐 숨이라도 시원하게 쉬어볼 생각으로 말이다. 아침이면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일어나, 창을 열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 하루가 상쾌해졌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건너편 산기슭은 산책로 가로등으로 환상적인 야경을 선사했다. 도심의 편리함과 북적이는 재미를 포기해야 했던 아내도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올해는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아침부터 뿌연 공기가 집 전체를 짓누르고 있다. 문을 열고 나가면 야릇한 냄새로 인해 숨쉬기가 불편하다. “여기가 참 공기 좋은 곳이구나”라는 청량감을 시각적으로 확인시켜 주던 건너편 산등성이의 또렷한 윤곽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지우개로 지우다 만 그림처럼 산은 뭉개져 보였고 이제는 “여기마저”라는 절망감만 커져 버렸다. 미세먼지는 단숨에 행복을 짓밟아 버렸다.
미세먼지란 직경이 10마이크로미터(㎛:1㎜의 1000분의 1) 이하의 아주 조그만 먼지 입자를 일컫는다. 더 작은 2.5㎛ 이하는 초미세먼지라고 부른다. 덩치가 큰 먼지는 상기도에서 걸러지기는 하지만 역시 문제를 일으킨다. 결막염과 인후염이 대표적인 질병이다. 작은 미세먼지는 폐 깊숙이 침투해 천식이나 만성폐쇄성 폐질환과 같은 호흡기질환을 악화시킨다. 더 작은 초미세먼지는 혈관에 침투해 심장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믿기 어렵지만 미세먼지는 암을 유발하는 1급 발암물질로, 미세먼지가 늘어나면 폐암도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세먼지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영유아의 자폐증과 연관이 있으며, 우울증과 치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한 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 자살이 4배나 증가한다고 한다. 미세먼지에 많이 노출되는 도로변에 거주하는 사람에게서 치매가 12%나 더 많이 발생했다는 캐나다의 연구 보고도 있다.
이제 미세먼지는 단순한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할 ‘재난(災難)’임이 분명하다. 정부는 정부대로 안전하게 숨쉬고 살 수 있는 공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당장의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인가를 해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별 방법이 없다. 기껏해야 성능이 개선됐다는 공기청정기 신제품이나 고르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미세먼지 마스크’를 착용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이고 유일한 대책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건강에 치명적인 미세먼지 경보가 울린 날에도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마스크에 대해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은 늘 한결같이 “설마, 난 괜찮겠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미세먼지도 피해갈 ‘초긍정주의자’라는 말이다.
물론 긍정적인 태도가 행복의 조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긍정이 언제나 옳은 것만은 아니다. 대출을 하러 간 은행에서 또는 지인의 장례식장에서 지나치게 긍정적이면 손해를 보기 쉽다. 질병도 마찬가지다. 근거 없이 “괜찮겠지” 하는 ‘비합리적인 낙관주의’는 병을 키우기 마련이다.
더불어, 혹시 우리의 생존 본능이 무뎌진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으면 행복이나 건강 따위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재난으로 안전에 대해서 ‘학습된 무기력’이 자리 잡게 된 것은 아닐까. 안전해야 할 곳이 안전하지 못한 비상식적 세상에서는 어차피 애써봤자 별 소용이 없으니 그저 귀찮게 느껴질 뿐이다.
비합리적 낙관주의 때문이든 아니면 생존 본능의 소멸 때문이든 미세먼지를 무시해서는 절대 안 된다. 미세먼지가 심각하다는 예보가 나왔다면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한다. 단언컨대, 10년 후 우리는 마스크 착용을 습관화했던 사람과 그렇지 않았던 사람으로 나뉠 것이다. 이미 질병에 시달리게 된 이후에 더러운 공기를 욕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내 행복과 건강을 지켜야 할 사람은 바로 나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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