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갑 기자 ]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사라지지 않는 한 병은 없어져도 설움은 대물림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심한 붓질로 그림을 그리듯 한센인 자녀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데 작은 힘을 보태겠습니다.”
19일 전남 고흥 소록도 한센인들의 청와대 초청 행사를 이끈 서양화가이자 사단법인 참길복지의 김가범 회장(71). 그는 “참삶의 지혜와 용기로 정화해서 어두운 땅에 작은 등불 하나라도 밝혀가는 일에 힘을 쏟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가 한센인과 가족을 초청하는 것은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다.
참길복지는 1975년 대구 지역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참길회가 전신. 참길복지의 정식 회원은 160명 정도. 이들은 1년에 두 차례 3박4일 일정으로 소록도의 한센인들을 찾아간다.
김 회장이 40년 전통의 봉사단체 사단법인 참길복지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3년.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김 회장은 우연한 기회에 친구에게서 소록도 한센인마을 이야기를 들으면서부터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5월 조선총독부가 소위 ‘문둥병’으로 불리는 한센병에 걸린 환자를 강제로 격리하기 위해 ‘자혜의원’(현 소록도병원)을 만든 것과 유전병이 아님에도 여성에겐 낙태 수술을 강제로 시행한 얘기를 듣고 충격이 쾌 컸다.
“나 자신을 위해 살기보다는 남을 위로하는 일이 필요한 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뭔지 곰곰이 생각했죠.”
2015년 참길복지 회장에 취임한 그는 화가로 활동하면서 소록도 한센인마을 지원에 적극 나섰다. 소록도가 환자들 스스로도 ‘저주받은 섬’이라고 불렀을 만큼 소외되고 척박한 곳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음식거리와 생필품을 싸들고 소록도를 찾았다. 음식도 만들어 주고, 건물 벽면 페인트칠과 하수구 청소도 하며 이것저것 거들다 보니 차츰 한센인들도 그를 친구나 동생처럼 대했다.
지금은 한센인과 허물없이 지내는 김 회장도 처음에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소록도에서 나흘을 지내고 집에 돌아와서는 전염된 것만 같은 불안감에 매일 목욕을 했을 정도였다.
요즘 그의 가장 큰 고민은 한센인 자녀들을 도와주는 일이다. 회원이 한 달에 몇 만원씩 내는 후원금으로는 봉사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대기에도 벅찼다. 2016년에는 서울 프리마호텔에서 후원의 밤 행사를 열고 유명화가 작품 자선 경매를 열어 수익금을 보탰지만 그것만으로는 장학금 혜택을 받는 자녀들은 적을 수밖에 없다. 올해는 이상진 IBK캐피탈 사장에게 5000만원을 후원받았다.
김 회장은 한세인들의 청와대 초청에 대해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상처받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위로받고 산다”며 “소외받고 사는 이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위로”를 당부했다.
김 회장은 최근 국내외 화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 고유 추상미술을 그리는 단색화 화가다. 1995년 사업하는 남편을 따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머물면서 미술학교 ‘노스리지’와 ‘피어스칼리지’를 다니며 그림을 시작했다. 단색화에 빠져 인간의 소통과 치유 문제를 색채 미학에 녹여냈다. 김 회장은 오는 9월에 금호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 계획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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