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지연 국제부 기자) 지난해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황소상 앞에 세워졌던 명물 ‘겁없는 소녀상(Fearless Girl)’이 1년 만에 자리를 옮긴다고 합니다. 새로 둥지를 틀 장소는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더 가까운 곳이라고 외신은 전했습니다.
조각가 크리스틴 비르발의 작품인 ‘겁없는 소녀상’은 지난해 3월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두고 NYSE에서 남쪽으로 두 블록 떨어진 볼링그린 공원의 ‘돌진하는 황소상’을 마주보고 설치됐습니다. 1.27m 높이의 소녀상은 두 손을 양쪽 허리에 올리고 3.35m 높이의 황소상을 당당히 응시하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당찬 표정을 통해 성 차별과 불평등 대한 항의, 여성의 리더십과 힘을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초 소녀상은 일주일만 설치될 예정이었지만, 뉴욕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자 뉴욕시는 설치 기한을 올 2월까지 연장했습니다.
소녀상을 영구 존속시키자는 뉴욕 시민들의 청원이 쏟아졌지만, 지난 1년간 철거 요구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개인 아티스트가 아닌 억만장자 금융회사가 세운 홍보물이다” “소녀상이 황소상을 완전히 망가뜨렸다”는 등의 비판도 있었습니다. 작가 개인이 자비를 들여 세운 황소상과 달리 소녀상은 투자자문회사인 스테이트스트리트글로벌어드바이저(SSGA)가 제작비를 지원했기 때문입니다. SSGA는 ‘성별 다양성 상장지수펀드(ETF)’를 만들었는데, 이 펀드는 뉴욕 증시에 상장돼 있는 기업 중에서 이사회 여성 비율이 30% 이상인 회사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으로 운영하는 상품입니다. SSGA는 이사회에 여성 비율이 높고 여성의 의견이 기업 경영에 잘 반영되는 기업이 수익률도 좋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내세워 이 펀드를 판촉했습니다.
황소상을 조각한 아르투로 디 모디카도 자신의 작품이 가진 의미를 소녀상이 변질시켰다며 퇴거를 요청했습니다. 모디카는 “소녀상은 번영의 상징인 황소상을 악당으로 바꾸는 광고 술책일 뿐“이라며 자신의 허락도 없이 동상을 설치한 뉴욕시에 소송을 제기한다고 발끈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자본주의와 월가의 상징으로 꼽히는 황소상은 1987년 증시 폭락 2년 후인 1989년 크리스마스에 NYSE 앞에 설치됐습니다. 의기소침해진 미국인들에게 힘을 주겠다는 의도에서였죠. 뉴욕 경찰은 무단으로 설치된 이 조각상을 철거했지만, 시민들의 요청으로 황소상은 NYSE에서 두 블록 떨어진 현재 위치에 다시 자리잡게 됐습니다.
연말까지 겁없는 소녀상을 옮기기 위해 뉴욕시와 SSGA가 협의 중입니다. SSGA는 “NYSE와 더 가까운 곳에 소녀상이 설치돼 더 많은 기업들이 여성 차별을 없애기 위한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자극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끝) /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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