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지나간다. 사랑도 인생도 한바탕 열대 스콜처럼 지나간다. 그렇게 관타나모(Guantanamo)를 두 번 스쳐갔다. 바람처럼 스친 초초하고 짧았던 만남이었지만 그 분위기만큼은 또렷하다. 바라코아로 가면서 한 번, 산티아고 데 쿠바로 돌아가면서 한 번 더 지난다. 이곳은 두 도시 사이의 중매자다. 콜럼버스도 1493년 2차 항해에서 스치듯 지나며 발견한 땅이자, 독립과 혁명이 휩쓸고 지나고도 아직 극복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는 땅이다. 아직도 한때 쿠바의 최대 적국이던 미군기지가 100여 년 넘게 건재하고 있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그림자가 이 도시에는 아직도 유령처럼 출몰하고 있다. 스페인 독립영웅 호세 마르티가 작사한 쿠바의 아리랑과 같은 쿠바 악곡 ‘관타나메라’의 고향이기도 하다.
나무 심고, 아이 낳고, 책 쓰는 쿠바인
관타나메라는 ‘관타나모의 농사꾼 아가씨’란 의미다. 쿠바의 국부(國父) 호세 마르티가 지은 시 구절을 노랫말로 삼은 작품이다. 치열한 문학의 힘은 감상적 혁명을 능가한다. “그것 봐 예술이라니까!” 마르티가 노래하는 듯하다. 혁명은 지지부진해졌어도 노래는 지금도 쿠바 전역에서 불린다.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자신은 야자수 무성한 고장 관타나모 출신의 진실한 사람으로 죽기 전에 가슴에 맺힌 시를 노래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는 내용이다. 그에게 가슴에 맺힌 시는 관타나모의 아리따운 농사꾼 처녀이기도 하고 가난한 쿠바의 민중이기도 하다.
“나는 진실한 사람 고향은 야자나무 숲 나 죽기 전에 영혼의 시를 노래하네.”
쿠바의 국가를 상징하는 나무는 반듯하게 치솟은 대왕야자수다. 그 나무 그늘에서 진실한 사람이 돼보면 어떨까? 그 나무 아래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관타나메라’에게 사랑 고백하기 딱 알맞은 풍경이 곳곳에 펼쳐진다. 바라코아에서 관타나모로 가는 길 곳곳에는 코발트 빛 캐러비안의 너울이 춤추고 야자나무는 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면 그 영화의 주인공인 쿠바의 전설적 뮤지션 콤파이 세군도는 호세 마르티의 쿠바인의 세 가지 의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무를 심을 것, 아이를 낳을 것, 책을 쓸 것.” 자신은 이 세 가지를 다 이뤄 행복하다면서 80년 넘게 피워온 쿠바산 시가를 물고 웃는다. “난 그 세 가지를 다 이뤘어요. 인생을 살면서 내가 이런 모든 것에 만족해요.” 그는 정직한 사내였다.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않았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칭찬했고 듬뿍 사랑해줬다. 가슴속에 사랑의 선율이 흘러나오면 그대로 노래했다. 관타나메라는 심플한 멜로디에 여인에 대한 사랑과 애국의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쿠바는 미국의 사생아 같은 처지다. 가장 미국을 닮았으면서 쿠바가 가장 미워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아프리카를 건너온 흑인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혼종의 문화가 닮았다. 미국 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도시 입구에서는 어김없이 야구장이 있어서 미국이 만든 룰에 따라 야구를 즐기는 소년들을 볼 수 있다.
‘어 퓨 굿맨’ 등 영화나 뉴스에 자주 등장
1898년 스페인 전쟁에서 미국군이 점령하고 그 후 미국의 원조로 스페인에서 독립한 쿠바 새 정부가 1903년 2월23일 관타나모만에 있는 관타나모 기지의 영구 조차를 인정한다. 쿠바 혁명 이후 양국이 국교를 단절했지만 현재까지 관타나모 미군은 여전히 관타나모 기지에 주둔하며 서먹한 동거를 하고 있다. 쿠바인의 미국 망명을 막기 위해 1961년 27㎞의 국경선 중 북동쪽 부분에 선인장을 심었다. 이를 ‘선인장의 장막’이라고 칭한다.
관타나모라는 지명이 우리에게 익숙한 이유는 영화나 뉴스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관타나모 미군 부대 내의 성폭력을 다룬 ‘어 퓨 굿맨’이란 영화로 이 지역이 유명해졌다. 9·11 테러 이후 전쟁에서 알 카에다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 연루돼 발생한 포로를 수용하면서 인권문제가 종종 발생하기도 했다. 관타나모는 면적이 약 160㎢고 항만 시설과 공항 활주로까지 있다. 쿠바의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군법이 적용되는 지역이다. 쿠바의 난민이 일부 들어와 살면서 쿠바판 이산가족도 있다.
미국풍의 자유가 넘치는 지역
관타나모는 바라코아와 산티아고 데 쿠바의 중간에 있어 주로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여행자들은 주로 시내에 잠깐 들러본다. 아바나의 원색의 유혹도, 산티아고 데 쿠바 같은 활동성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깔끔하고 아담하다. 도심에 흐르는 분위기는 정치적인 구호도 다른 도시에 비해 적고 아이러니하게도 미국풍의 자유의 기운마저 감돈다. 도시 정중앙에는 예의 호세 마르티 공원이 있다.
1863년 세운 하얀색의 산타 카탈란니나 데 리치스 교회가 인상적이다. 스페인의 여신을 모시고 있고 칼을 허리에 찬 남자의 상은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영웅 페드로 안토니오 페레스의 상이라고 한다. 광장 한편에는 세이바(Ceiba) 나무가 심어져 있다. 스페인어로 돼 있는 ‘1902-1952’이란 표식으로 봐 독립 50주년 기념식수로 보인다. 이 도시의 대표적 건축물로는 1916년 이 지역의 건축가 레티시오 살시네스가 개인 주택으로 지은 살시네스 성이 유명하다.
광장 옆에 높이 15m 정도의 청동으로 만들어진 기념물이 서 있다. 꼭대기에 나팔을 부는 인물상이 있고 그 아래에는 4명의 아이가 각각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글러브와 야구공을 손에 든 소년, 글 읽는 소년, 기타를 치는 소년, 수예에 힘쓰는 소녀다. 아이들에게 학문이나 스포츠, 음악을 장려하기 위한 기념물이다. 쿠바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교육이 선진화돼 있는 나라로 야구나 음악은 여러모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행 메모
관타나모(Guantanamo)는 관타나모주의 주도. 인구는 약 20만8000명이다. 산티아고 데 쿠바의 동쪽 약 70㎞ 관타나모만의 중앙에서 약 20㎞ 북쪽 지점에 있다. 1819년 스페인이 건설했지만 18세기 말 아이티 독립에 따라 아이티에서 프랑스인 망명자가 다수 이주해왔기 때문에 그 영향이 시내 건축물 양식 등에 남아 있다. 농업지대의 중심지로 사탕수수, 커피 등의 집산 작업이 이뤄지고 농산물 가공이 활발하다. 커피의 정제, 제당, 초콜릿 제조, 주류 제조, 제염 등의 공업이 발달해 있다.
관타나모=글 최치현 여행작가 maodeng@naver.com
사진 정윤주 여행작가 traveler_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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