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40여명이 눈치 안보고 불편·불만사항 게시
글 올라오면 2주내 피드백…'열린 조직' 또 한번 혁신
[ 이유정 기자 ]
“사은품 행사장에 가 보니 대기시간이 길어 소비자들이 불편해 합니다.” “여름철엔 반바지를 입고 일할 수 있게 해주세요.” “간부회의에 담당 직원도 참석하면 좋겠네요.”
현대백화점의 사내 익명게시판 ‘불라인드(불편+블라인드)’에 올라온 글들이다. 불라인드는 음지에서 오가던 직원들의 불편과 불만사항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이달 초 신설된 게시판이다. “직원 불만이 누적되거나 창의적 아이디어가 사장되지 않도록 바로바로 피드백을 줄 필요가 있다”는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47)의 뜻이 반영됐다.
공교롭게도 현대백화점이 불라인드를 신설한 뒤 대한항공 오너들의 ‘갑질’ 의혹이 익명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 ‘블라인드’ 등을 통해 확산돼 사회적 이슈로까지 번졌다.
◆뭐든 지적하면 2주 내 피드백
현대백화점의 불라인드에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가 직원들의 신청을 받아 선발한 40여 명의 ‘프로불편러’가 글을 올린다. 프로불편러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불편과 불만을 먼저 발견해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사람을 뜻하는 인터넷 신조어다.
현대백화점의 프로불편러 40여 명은 회사 내부에서 ‘파파라치’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직원들의 불편·불만사항을 속속들이 찾아내 이를 불라인드에 올려 공론화한다. 지금까지 80여 건의 글을 올렸다. “서서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등 단순한 아이디어부터 “소비자가 상품권으로 결제하면 전화번호를 여러 번 입력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행사 홍보용 전단의 효율성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등과 같은 업무 관련 내용까지 다양하다.
글이 올라오면 회사는 2주 안에 피드백을 한다. 해결책을 내놓거나 검토 결과를 알려준다. ‘사은품 수령 대기시간이 길다’는 지적에 대해 회사 측은 모바일 앱 대기표 발권 서비스를 검토하기로 했다. 얼마 전엔 “불라인드 게시판이 우리만의 리그가 되지 않도록 경영층이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면 좋겠다”는 지적도 올라왔다. 이에 회사 측은 게시물이 일정 수 이상 추천을 받으면 경영지원본부장(부사장)이 직접 댓글로 피드백을 하도록 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과 비슷한 방식이다.
◆“조직문화 바꿔야 혁신 가능”
현대백화점은 프로불편러 제도를 통해 조직 내 소통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불평과 불만을 사내에서 자율적으로 해소하면 외부의 블라인드 등과 같은 공간에서 쌓인 불만이 터져 나올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한 번 곪아 터지면 회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위기가 확산되기도 한다.
특히 모바일 앱인 블라인드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회사의 문제점을 ‘폭로’할 수 있어 많은 직장인이 이용한다. 대한항공 대주주 일가의 갑질 의혹이나 한샘 교육 담당자의 신입사원 성폭행 논란은 블라인드를 통해 외부로 알려졌거나 확산됐다.
현대백화점의 프로불편러 제도에는 조직문화 선진화를 강조해온 정지선 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됐다. 정 회장은 게시판을 설치하는 데 그치지 말고 제기된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해 최대한 신속하게 피드백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올초 신년사에서도 “변화와 혁신을 실행하는 것은 사람이고,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조직문화의 힘”이라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이 일하는 문화를 바꾸는 제도 개선에 앞장서온 것도 정 회장의 적극적인 지원에서 비롯됐다. 현대백화점은 △임신부 직원에게 임신 전 기간 2시간 단축근무를 적용하는 ‘예비맘 프로그램’ △휴가를 2시간 단위로 나눠 쓸 수 있는 ‘반반차 제도’ 등을 유통업계 최초로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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